상하이(중국)와 제주를 오가는 길이 311m, 무게 14만톤의 초대형 크루즈선 ‘로열 캐리비언 마리나’호의 사보이 대극장(9월23일). 크루즈 여행 동안 각종 공연이 열리는 이 곳에 밤이 되자 승객들이 설렘과 기대가 담긴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드라마 ‘상속자’의 여주인공인 한류스타 박신혜와의 팬 미팅에 참가하려고 상하이에서 승선한 1300여명의 중국인 팬들이다. 밤 9시 반. 주인공 박신혜가 등장하자 눈부신 카메라 플래시와 환호가 일제히 쏟아졌다. 그때서야 객석 뒤에서 무대를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보던 사람들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크루즈 팬미팅을 기획, 진행한 롯데면세점 실무팀들이다.
● 관광산업 효자 면세점 “앉아서 번다? 현실 모르는 소리”
박신혜 팬미팅은 면세점 업계에서 처음 시도한 크루즈 이벤트다. 행사를 기획·진행한 롯데면세점은 상하이에서 여행사를 통해 인근 장쑤성, 저장성 등의 관광객을 제주도로 유치했다. 이번 팬 미팅 준비에 들어간 비용은 2억여원. 적은 액수가 아니다. 이렇게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관광객을 ‘모셔오는’ 이유는 뭘까.
국내 면세점 시장 규모는 세계 1위다. 2013년 6조8000억원으로 2위인 영국의 3조8000억원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크다. 여기서 올해 6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인 관광객 ‘요우커(遊客)’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문제는 우리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1억명으로 추산되는 요우커를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김보준 롯데면세점 마케팅 부문 이사는 “면세점이 겉보기에 공항이나 호텔 등에 입점해 찾아오는 손님만 상대하는 앉아서 버는 곳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경쟁이 무척 치열하다”며 “전체 직원의 3분의2가 야전을 뛰는 영업 인력일 정도로 고객 유치에 총력을 기울인다”고 설명했다.
● 크루즈 팬미팅서 스타디움 콘서트까지
크루즈 이벤트를 기획한 것도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잡기 위한 고민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크루즈 투어는 세계관광기구가 ‘21세기 최고 관광 상품’으로 꼽는 분야다. 제주는 매년 16%씩 급성장하는 동북아 크루즈 항로 중심에 있다. 롯데면세점이 지난해 제주에 유치한 크루즈 승객은 11만명, 올해는 20만명을 예상하고 있다. 박신혜 크루즈 팬미팅 투어의 실무를 맡았던 신준영 롯데면세점 상하이 법인장은 “통상 9월은 크루즈 비수기인데 팬미팅 덕분인지 모객이 예상을 넘은 3800명이나 돼 크루즈측도 놀라고 있다”고 소개했다.
크루즈 이벤트를 벌이는 데는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매입액)’가 높은 알짜 손님이란 점도 크다. 크루즈로 온 중국인 관광객 1명이 한국서 쇼핑으로 쓰는 돈은 평균 70만원으로, 다른 관광객보다 월등히 높다.
롯데면세점이 해외 고객 유치를 위해 대형 이벤트를 벌이는 것은 크루즈 투어만이 아니다. 2004년부터 열고 있는 패밀리 콘서트는 다른 나라 면세점은 할 수 없는 ‘한류 콘텐츠’를 이용한 대형 프로모션이다. ‘별에서 온 그대’의 김수현, 박해진이 참여해 8월29일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열린 패밀리 콘서트에는 1만5000여명의 중국인을 포함해 2만여명의 외국 관광객이 모였다. 30억원이 들었지만 외국인 매출만 200억원에 경제효과 800억원을 기록했다.
● 중국 하이난 7만m² 규모 면세점 오픈, 일본도 면세점 증설
단일 업체의 노력만으로 해외 관광객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육성 플랜과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 요우커의 고장, 중국은 해외 쇼핑에 치중하는 자국민을 국내로 돌리기 위해 쇼핑 인프라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국영기업인 중국면세품그룹(CDFG)은 8월 휴양지인 하이난성 싼야시 하이탕만에 50억 위안(약 8250억원)을 투자해 규모 7만m²인 세계 최대 규모의 면세점을 오픈했다. 국내서 가장 큰 롯데면세점 본점(1만1200m²)의 6배이고, 잠실 코엑스(약 3만636m²)보다도 두 배나 크다. 심지어 화장품 매장만 8000m²로 축구장보다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밖에 상하이 크루즈 터미널을 비롯해 베이징과 허베이성에 대형 면세점을 오픈하거나 준비 중이다.
2020년까지 관광객 2000만명을 목표로 내건 일본은 현재 5777개인 면세점을 1만개로 늘릴 계획이다. 특히 도쿄의 대표적인 관광지 오다이바에 대형 면세점을 준비하고 있다. 대만도 군사보호지역이던 금문도를 개발해 섬 전체를 쇼핑, 관광지역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강훈 롯데면세점 마케팅 팀장은 “경쟁 국가들처럼 우리도 외래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제주 같은 지역에 대규모 쇼핑 클러스터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