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환풍구 붕괴사고’가 발생한 17일 밤 동아일보 편집국 회의에서는 환풍구 시설 건설기준을 취재해 기사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토교통부 출입기자가 서둘러 관련 내용을 취재했지만 좀처럼 실체가 파악되지 않았다. 마감이 임박해서야 “국토부 담당자들이 관련 규정을 찾아봤는데 도저히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관련 규정이 없는 것 같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안전 기준 하나 제대로 안 만들어 놨으니 이런 사고가 터지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대통령이 2차례나 직접 주재한 규제개혁장관회의 장면을 떠올렸다. 기업인들이 “각종 규제 때문에 공장을 지을 수 없고, 넓힐 수도 없어서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면 대통령은 즉각 관련부처 장관에게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하라고 지시한다. 대형 안전사고가 터졌을 때 이렇게 관련 기업들이 제대로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따지게 되는 안전기준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규제사항이다.
13일 입찰 공고를 내고 8번째 주인 찾기에 나선 쌍용건설 매각이 이렇게 지연된 이유도 ‘규제’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매각에 실패한 7번 중 4번은 입찰자가 있었지만 ‘유효 경쟁’이 성립되지 않아 유찰됐다. 국가계약법에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를 매각할 때는 최소 2군데 이상의 유효한 경쟁자가 참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단독 입찰에 따른 헐값매각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다. 하지만 쌍용건설 직원들은 “사겠다는 회사가 있을 때 팔았더라면 진작에 팔렸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2007년 1차 매각 때 입찰에 참여한 동국제강이 제시한 인수가격은 4000억 원이 넘었지만 현재는 2000억 원만 내면 쌍용건설의 새 주인이 될 수 있다. 헐값 매각을 막기 위한 장치가 오히려 매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경제 활성화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처럼 비치는 규제의 대부분은 법규나 시행령, 조례의 형식을 띠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는 규제를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라고 가르친다. ‘보이지 않는 손’만으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손’을 만든다는 것이다.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큰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의 배경에는 정부 규제의 실패가 자리 잡고 있다.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의 원인 중 하나도 규제 미비라고 할 수 있다.
‘규제’와 ‘기준’을 무 자르듯이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것처럼, 공무원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기준이지만 해당 ‘기준’의 적용 대상이 되는 기업이나 국민의 눈에는 불필요한 규제로 보일 수 있다. ‘기준’이라고 쓰고 ‘규제’라고 읽는 상황이다. 입안 당시에는 기준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규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독과점 기업에 대한 ‘맞춤형 규제’를 연구한 프랑스 툴루즈1대학의 장 티롤 교수가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사실은 ‘적절한 규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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