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출퇴근에 탄력근무… 양가 도움없이도 육아-맞벌이 척척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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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돌려주세요]
⑤축산물품질평가원의 다양한 유연근무제

22일 오후 경기 군포시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새벽에 출근한 직원들이 일찍 퇴근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일찍 출근한 만큼 일찍 퇴근하는 식으로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제공
22일 오후 경기 군포시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새벽에 출근한 직원들이 일찍 퇴근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일찍 출근한 만큼 일찍 퇴근하는 식으로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제공
《 축산물품질평가원 제주지원 김미나 과장(29)은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지 7개월 된 ‘초보 워킹맘’이다. 김 과장이 복직 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아기는 누가 봐 주냐”는 것. 그냥 어린이집에 맡긴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한국 특유의 근로문화에서 두 살짜리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하기란 쉽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김 과장이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기고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운영하는 유연근무제 덕분이다. 김 과장은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 아침엔 남편이 출근하면서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오후에는 김 과장이 퇴근하면서 아기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다. 김 과장은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도 육아와 맞벌이가 가능할 수 있었다”며 “아이와 교감을 나눌 시간도 많아진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  

○ 노사가 합심해 근로문화 개선

1989년 설립된 축산물품질평가원은 국내산 축산물의 등급을 판정하고, 생산부터 소비까지 모든 단계를 관리하는 축산물이력제를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다. 전국 150여 곳의 도축장을 관리하면서 국민의 먹을거리를 직접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기타 공공기관보다 전문인력 비율이 높고 야근과 휴일 근무도 많은 편이었다.

축산물품질관리원은 지난해 4월부터 근로문화 개혁을 추진했다.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정책에 대응하려면 각종 비용을 줄이고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또 축산물 업무 특성상 특정 시기에 업무량이 집중되거나 떨어지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따라 야근 등 초과근무를 제한하는 방안이 제시됐고, 각종 유연근무제 도입을 추진했다.

직원들은 “초과근무 수당을 줄이려는 것 아니냐”며 반대했다. 그러나 축산물품질관리원은 설립 이후 25년간 한 번도 노사분규를 겪지 않은 ‘소통의 노하우’가 있었다. 노사는 근로문화 개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보고 넉 달에 걸쳐 대화를 진행했다. 노사발전재단에 컨설팅을 의뢰해 다양한 유연근무 제도를 개발하는 한편으로 수십 차례의 노사협의, 부서별 워크숍 등을 통해 근로문화 개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결국 지난해 8월 유연근무제 도입과 초과근무 제한 등을 담은 근로문화 개선 정책에 노사가 전격 합의했다. 이에 따라 초과근무는 주당 12시간으로 제한되고 집중근무제, 탄력근무제 등이 도입됐다. 또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을 ‘가족 사랑의 날’로 지정해 무조건 ‘칼퇴근’을 하도록 했다.

근로문화 개선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세 남매를 키우는 남승엽 과장(38·경기사업본부 고객홍보팀)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업무에 더 집중하게 되면서 야근을 하는 습관을 버리게 됐다”며 ”가사일로 지쳐 있는 아내와 육아를 분담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관계자는 “근로문화 개선을 빌미로 월급을 줄이려는 것 아니냐는 반대 여론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며 “노사가 서로 믿음을 갖고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안을 개발한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 1년 만에 정착된 유연근무제

노사가 근로문화 개선에 전격 합의한 지 1년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축산물품질평가원의 유연근무제는 상당히 빨리 정착되고 있다. 제도만 도입하고 실제로 잘 정착되지 않는 여타 기업이나 공공기관과는 다른 모습이다. 개인의 일정에 따라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시차 출퇴근제는 286명의 직원 가운데 186명이 이용할 정도로 참여율이 높다. 한 달 전에 신청해야 이용이 가능했던 유연근무제를 하루 전에만 신청해도 부서장 결재로만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면서 직원들의 참여가 급격히 늘었다. 또 집과 가까운 곳에서 근무를 하는 스마트워크제(20명)나 집중근무제(65명) 등도 상당수의 직원이 이용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2013년 유연근무제 선진기관으로 선정되었다.

문제는 현재 경기 군포시에 있는 본원이 내년 7월 세종시로 이전한다는 것. 이에 직원들의 유연근무제와 스마트워크제에 대한 수요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고 스마트워크 시스템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또 특정일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늘리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하루에 4∼12시간씩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도입해 운영할 방침이다.

유연근무제가 정착되면서 직원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동아리 활동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18개 동아리에 347명(복수 가입 허용)이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동아리가 활성화되었다. 허영 축산물품질평가원장은 “직원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맞춤형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다양한 유연근무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신청 및 승인 절차를 부서 단위로 간소화하면 직원 참여율을 많이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 “노동시간 보다 質 중요… 아침에 눈뜨면 출근하고 싶은 회사로” ▼

‘일-가정 양립’ 추진 허영 원장


“아침에 눈 뜨면 출근하고 싶은 회사가 되어야 합니다.”

허영 축산물품질평가원장(54·사진)은 초과근무 제한 등 일 가정 양립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기관의 존립 가치는 고객 만족이며 행복한 직원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초과근무를 제한하는 궁극적 이유는 무엇인가.

“업무의 생산성을 높이고 직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취임 이후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직원 간담회 등을 한 결과 직원들이 잦은 야근으로 피로가 누적돼 있고, 업무시간 집중도도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초과근무를 제한하면 여가 활동이 늘어나고 다음 날 업무에도 집중할 수 있는 선순환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적극 추진했다.”

―반대도 상당했을 텐데 비결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집중했다. 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업무 생산성을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을 노사협의회, 부서별 워크숍 등 수십 차례의 대화를 통해 적극 설명했다. 특히 직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지 않고 전문기관 컨설팅을 통해 새로운 근무형태 등을 개발한 것이 공감대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공공기관은 노동 강도가 낮다고 흔히 생각한다.

“요즘 공공기관은 정부 경영평가와 청렴도 평가 등을 받고 있어서 노동 강도가 낮다는 것은 옛말이다. 노동 강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직원 만족도는 낮아지면서 사기도 떨어졌다. 결국 공공기관도 글로벌 기업들처럼 ‘노동의 시간’이 아닌 ‘노동의 질’이 중요하다는 인식으로 근로문화 개선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경영 면에서는 손해라는 인식도 있다.

“장시간 근로는 업무의 질을 떨어뜨린다. 업무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정시 퇴근 문화를 정착시키면 에너지 비용 등 각종 경비도 절감할 수 있다. 또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여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회사 차원에서는 손해가 아니라 이득이 된다고 봐야 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유연근무제 등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사전 검토를 충분히 하고 직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먼저 간부들을 대상으로 인식 전환 교육을 했고, 부서별 유연근무 할당제를 도입하는 등 경영진이 확실한 의지를 갖고 각종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노사 간에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초과근무#유연근무제#근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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