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저녁 싱가포르 실내체육관. 세계 최고의 여자 테니스 선수를 뽑는 ‘BNP파리바 여자테니스협회 파이널스 싱가포르’ 경기가 한창이었다. 강력한 서브가 이어질 때마다 관중은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출전 선수는 세계 랭킹 1위 세리나 윌리엄스와 5위 유지니 부샤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로 4강 출전 티켓이 걸려 있는 만큼 한 치의 양보가 없는 승부가 벌어졌다.
이날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관람 보조기구로 사용했다. 경기 며칠 전 다국적 소프트웨어 기업 SAP는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경기분석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앱의 기능은 놀라웠다. ‘버추얼 리플레이’라는 분석 기능은 방금 윌리엄스가 날린 시속 205km의 강서브도, 경기장 구석을 찌르는 부샤드의 역습도 즉시 스마트폰 화면에서 그래프로 보여줬다.
승부의 향방을 점치는 ‘리턴 콘택트 포인트’ 기능은 공을 받아 친 위치를 즉시 분석해 스마트폰에 표시했다. 이 결과 부샤드가 좌우로 훨씬 더 많이 뛰어다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대방에 휘둘리는 것이다. 분석대로 윌리엄스가 경기 시작 1시간여 만에 세트 스코어 2-0으로 완승을 거뒀다. 기존 기술로 이런 분석을 하려면 몇 시간도 부족하다. SAP는 대용량 자료를 순식간에 분석할 수 있는 신기술로 이런 서비스를 개발했다.
여자테니스협회(WTA)는 선수 훈련 때 이 기술을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관객용 앱처럼 서브의 방향과 속도 리턴포인트 등을 확인할 수 있고, 라켓 아래에 측정 장치를 붙이면 라켓을 휘두르는 속도도 파악된다. 월드컵 당시 빅데이터 훈련기술을 동원해 우승을 거머쥔 독일 축구팀의 훈련 프로그램도 이 같은 SAP 기술이다.
흥미롭게도 SAP의 초고속 데이터 분석 기술은 한국 기술진이 개발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차상균 교수가 2000년 제자들과 함께 설립한 벤처기업 ‘TIM(Transact in Memory)’이 개발한 ‘하나(HANA)’ 빅데이터 플랫폼이다. SAP는 2005년 TIM을 인수하면서 이 기술을 확보했다.
제니 루이스 SAP 기술 총괄 리더는 “하나 플랫폼을 토대로 두 팀이나 개인이 일대일로 승부를 겨루는 모든 경기에 쓰는 ‘매치 인사이트’라는 분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SAP는 빅데이터를 기업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보고 스포츠뿐만 아니라 금융, 소매관리, 의료, 광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어데어 폭스마틴 SAP 아시아태평양일본법인 회장은 “SAP는 하나 플랫폼 도입 이후 아태지역에서 매년 세 자릿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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