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기업이나 경영자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두 가지 큰 줄기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맡은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지에 오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경남 창원에 있는 범한산업㈜(대표 정영식·www.bumhan.com)이 그렇다. 1990년 설립된 이 회사는 선박이나 원자력 발전플랜트 등에 쓰이는 ‘공기압축기’ 분야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공기압축기는 초고압 공기 압축으로 압력을 높여 구동력을 살려주는 장치로, 부가가치가 높은 틈새시장이다. 이 회사는 초고압 공기압축기 내수시장 점유율 100%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독보적인 아성을 구축하고 있다.
주로 선박의 주 기관과 가스터빈 시동용, 해양설비와 시추선 등 해저탐사용으로 사용되는 해상용 공기압축기를 생산한다. 이밖에 송배전 설비의 초고압 전류차단기용과 호흡용 고압 공기압축기, 원자력을 비롯한 발전설비용, 항공우주산업 등 육상용 공기압축기도 공급하고 있다. 주문자 위탁 방식으로 생산되는 제품의 종류는 무려 80여 종에 달하며, 모두 자체 기술력을 통해 제조된다.
BHH 시리즈.범한산업㈜ 공기압축기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유럽 일본 등 수입 제품보다 크기를 줄여 무게가 20∼30% 가볍고, 진동과 소음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또 유지비도 평균 20% 적게 든다. 2007년 정부의 ‘세계일류상품’ 인증을 받은 이유다. 지난해 1월 위성 발사에 성공한 나로 우주센터에도 초고압 공기압축기를 납품했다.
중소 조선소부터 4대 메이저 조선소까지 고품질 공기압축기를 납품해 온 범한산업㈜은 유럽 선주들 사이에서도 브랜드 인지도가 높다. 2010년 말부터는 연매출 10조 원대의 다국적 기업인 ‘아틀라스콥코’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해군 방산 분야로 수요처를 다변화하며 조선업 불황에 대처하고 있다.
올 초에는 닛산자동차 공식 딜러인 ‘범한모터스’를 자회사로 설립하고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에 신규 전시장과 서비스센터를 오픈했다. 닛산 창원 전시장은 연면적 약 529m², 2층 규모로 최대 5대의 차량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갖췄다. 전시장과 함께 2개의 워크베이를 갖춘 닛산 창원 서비스센터도 같은 위치에 문을 열었다.
범한산업㈜은 경남을 대표하는 사회공헌 기업으로도 이름이 높다. ‘경주마’를 통해 행복한 나눔을 전파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단순히 기업 이익의 일정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경마 스포츠를 나눔 운동으로 발전시키는 가치를 창출했다.
정영식 범한산업㈜ 대표는 ‘경주마 기부왕’으로 통한다. 그는 대통령배를 3연패한 최고의 경주마 ‘당대불패’의 마주(馬主)다. 당대불패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총 27번 출전해 18번 우승을 거머쥔 당대의 명마. 현역 시절 벌어들인 상금만 총 26억3800만 원에 달한다. 뛰어난 실력만큼 선행에도 앞장서는 ‘동물기부’ 사례로 유명하다. 정 대표는 우승 상금 중 일부를 사회복지법인에 기부해 고액기부자들 명예의 전당인 ‘아너소사이어티’에 이름을 올렸다.
정 대표는 “당시 당대불패가 큰 상도 많이 받고 우승도 했는데 이 복을 내가 모두 가질 게 아니라 주변과 나눠야겠다고 생각해 기부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2004년 부산경남경마공원이 개장된 후 마사회에서 개인 마주를 모집했을 때 경주마와 인연을 맺은 그는 현재 70여 마리를 보유하고 있는 부경 대표 마주로 알려져 있다.
정 대표는 이외에도 4∼5년 전부터 매년 회사 이익금에다 개인 소득의 일부를 더해 연간 2억 원 범위 내에서 장학금이나 이웃돕기를 위한 기부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영식 대표와 최고의 경주마 ‘당대불패’.▼정영식 대표 인터뷰… “기술·신뢰로 10년 내 글로벌 톱5 진입”▼
“10년 안에 공기압축기 세계시장에서 ‘톱5’ 안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직원들에게도 이를 달성하기 위해 자기 계발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현역 시절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당대불패처럼 앞만 보고 뛰겠습니다.”
열혈 최고경영자(CEO)이자 사회사업가로, 정영식 범한산업㈜ 대표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의 생에서 두 가지 삶을 산다. 그는 작은 정성으로 실천하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거듭 강조했다.
정 대표는 한국해양대 기계학과를 졸업하고 선박 관련 엔지니어링회사에 근무하다 1990년 창업했다. 그의 나이 서른 한 살 되던 해다. 초창기에는 독일과 프랑스 등 외국 공기압축기를 구해 분해와 조립을 반복하면서 내공을 키웠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1993년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전까지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제품이었다.
과학기술부 국산신기술인증(KT), 산업자원부 우수품질인증(EM) 등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지만 처음엔 어려움도 많았다. 선박 발주 주체인 국내외 선사들이 생소한 기업의 공기압축기를 외면했던 것. 항해 중에 고장이 나면 바다 한가운데에서 항구로 되돌아와야 하는 기회비용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반전의 기회는 창업 후 5년이 지나 찾아왔다. 당시 정부가 국적 선을 건조할 경우 국산 제품을 장착하도록 하면서 범한산업㈜ 공기압축기의 수요가 늘기 시작했다. 해외 선사들의 러브 콜이 이어지면서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올해 매출 목표는 약 200억 원, 국내 시장 점유율은 100%다.
정 대표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기업들에 비하면 25년 짧은 업력의 후발주자이지만, 기술과 신뢰를 무기로 내수시장을 석권했다”며 “직원 50여 명 중 9명이 연구원들로 매출의 10%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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