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부모-아기 교감을 교실로 끌어들여
체험통해 ‘공감능력’ 익히게 만들어… 60만명 참여 글로벌 프로그램 발전
왕따 시키는 아이 설자리 사라지자… 학업에서도 눈에 띄는 향상 가져와
미국 워싱턴 소재의 공립학교인 모리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교실 바닥에 녹색 담요를 깔아 놓고 특별한 교사를 기다린다. 바로 생후 1년도 안돼 말도 할 줄 모르는 ‘갓난아기’ 선생님이다. 몸짓과 표정, 소리로만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드러낼 수 있는 갓난아기를 통해 아이들은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분노, 행복과 좌절 등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접한다. 바로 공감(共感) 교육 프로그램인 ‘공감의 뿌리(Roots of Empathy)’ 수업의 한 장면이다.
만 5∼13세 아이들을 타깃으로 설계된 공감의 뿌리는 캐나다의 사회적 기업가 메리 고든이 1996년 고안했다. 고든은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기업가를 발굴해 육성하는 국제 비영리조직 아쇼카가 선정한 아쇼카펠로(Ashoka Fellow)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아이들에게 공감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부모와 갓난아기 사이에 오가는 교감을 교실 환경으로 끌어들였다. 공감은 ‘이론’이 아니라 오직 ‘경험’을 통해 익힐 수 있는 만큼 학생들이 갓난아기와 공유하는 체험 자체를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이다. 현재 공감의 뿌리는 캐나다는 물론이고 미국, 영국, 독일, 뉴질랜드 등 전 세계 7개국에서 60만 명의 아이들이 참여한 ‘글로벌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 모리초등학교 아이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모리초등학교처럼 예산 제약이 심한 공립학교에서 별도의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이런 공감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운영하는 이유는 뭘까. 21세기를 살아갈 성숙한 시민으로 아이들을 키워 나가기 위해선 읽기나 수학 능력만큼 공감 역량이 필수적이라는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변화의 창조자로 만들겠다’는 아쇼카의 신념과도 맞닿아 있다. 아쇼카가 2012년부터 전 세계에서 공감 교육에 힘쓰는 학교들을 ‘아쇼카 체인지메이커 스쿨’이라는 이름으로 발굴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리초등학교의 교장인 캐럴라인 앨버트가비는 공감 교육이 학교에 가져 온 가장 큰 변화에 대해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2009년 이 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공감 교육에 힘써온 그는 “5년 전만 해도 교실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못된 말이나 심술궂은 행동을 해 교장실로 불려와 벌을 받는 아이들이 수두룩했지만 지금은 그런 아이들을 거의 찾을 수 없다”며 “남들의 아픔과 곤경에 공감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다른 친구가 마음을 다치거나 그럴 만한 일이 생기면 기꺼이 나서서 제지하려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리초등학교에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이 끼친 영향력은 비단 사회 정서적 능력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업 성적 면에서도 눈에 띄는 발전이 있었다. 4학년 학생들이 공감의 뿌리 교육을 받기 전인 3학년 때에는 워싱턴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전체의 65∼70%가 성취도 목표를 달성했지만 공감의 뿌리 교육을 받은 후엔 이 비중이 80%를 넘어섰다. 이는 워싱턴 평균(약 50%)보다 3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앨버트가비 교장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결과”라며 “아이들이 스스로 바보 취급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없이 배움에 전념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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