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기-성실함-자신감이 쏘아올린 홈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6일 03시 00분


[스페셜 리포트]폐교 직전 시골학교 원동중학교가 야구 우승컵을 거머쥔 비결은

올해 7월 28일 부산 서구 구덕야구장에서 열린 제44회 대통령기 전국 중학야구대회에서 원동중이 2013년에 이어 또다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문양수 교장(가운데)과 학생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원동중 제공
올해 7월 28일 부산 서구 구덕야구장에서 열린 제44회 대통령기 전국 중학야구대회에서 원동중이 2013년에 이어 또다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문양수 교장(가운데)과 학생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원동중 제공
원동중학교는 야구계에서 유명한 학교다. 폐교 위기에 몰린 작은 시골 학교에서 야구부를 창단한 지 3년도 안 돼 ‘대통령기 전국 중학 야구대회 우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명실공히 전국적인 팀이 됐다. 야구 명문중에 입학하지 못해 경남 양산의 신생 야구부에 와야만 했던 ‘후보급’ 선수들도 이제는 명문고 야구부 감독들이 먼저 데려가려고 하는 상황이 됐다. 작은 시골학교 야구부가 단기간에 이처럼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놀라운 기적의 비결은 무엇일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64호(11월 1일자)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낸 학교 혁신 사례를 집중 분석했다. 원동중학교 야구부 사례를 요약한다.

○ “기본훈련 안하면 살아남을수 없다”

원동중은 2010년 말 신민기 전 한화 이글스 선수를 감독으로 데려온 후 본격적인 팀 창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국에서 야구부원 13명을 데려왔고, 이듬해 3월 21일 정식으로 야구부를 창단했다. 첫 훈련만 하더라도 실력이 형편없었다. 신생 야구부로 훈련 체계가 제대로 자리 잡혀 있지 않았던 데다 선수들은 본인들이 원하는 야구 명문중에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감이 부족한 상태였다.

기본기를 닦는 것이 중요했다. 창단 후 6개월 동안은 기본 훈련만 했다. 근력 훈련, 달리기, 공 던지기, 타격 등 4가지 훈련에 집중했다. 초등학교 때 이미 배운 내용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은 중학교 학생들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선수들이 일탈하기 시작했다. 훈련에 집중하지 않고 잡담을 하거나 화장실을 간다며 수시로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연습시간에 늦고 아예 몇 시간씩 연습에 빠지는 일도 생겼다. 학생들의 불만 여론이 높아지자 학부모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왔다. 급기야 야구부를 탈퇴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래도 학교 측은 방법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기본 훈련을 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면 기본을 닦아라”라며 기본기 교육을 더 강조했다.

○ 교과성적 떨어지면 보충수업

원동중이 야구부 창단 초기에 세운 또 다른 원칙은 ‘공부하는 야구선수’를 키운다는 것이었다. 선수들이 운동을 그만둘 때를 대비한 측면도 있었고 책임감을 높이고 인성 교육을 강화하자는 목적도 있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제도와 규칙을 마련했다. 우선 야구부원들이 매 정기고사에서 교과 평균의 50% 미만인 과목이 3개 이상인 경우 방과 후 보충수업을 받도록 했다. 야구부원의 수업 태도에 문제가 있으면 교사가 바로 감독에게 알렸다. 수업에 성실히 참여하지 않으면 운동을 하기 힘든 구조를 만든 셈이다. 선수들의 수업 태도가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가끔 감독이 자습시간에 들어가 현장을 관찰하기도 했다.

수업시간이든, 훈련에서든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면 벌을 줬다. 어떤 때는 특별훈련을 시키기도 하고, 어떤 때는 훈련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식으로 제재를 했다. 주장을 뽑을 때의 가장 큰 기준도 성실함이었다. 성실한 선수에게 주장을 맡기고 중요 경기에 출전시키는 등 성실함이 직접적으로 보상을 받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여줬다.

○ 실수를 비난하지 않는 풍토 조성

원동중은 기본기 훈련과 인성 교육을 강조함과 동시에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작은 학교의 신생 야구부라고 선수들의 기가 죽을까봐 염려한 것이다. 감독은 늘 “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선수들이 경기 전부터 “질 것 같다”는 말을 하면 호되게 야단쳤다. 경기에서 실수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가르쳤다.

연습 경기나 공식 경기에서 실수해도 선수를 면박주거나 혼내지 않았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것이며, 실수에 대해 지나치게 대응하면 오히려 팀 전체의 사기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상훈 현 감독은 “경기에서 이긴 것은 선수들이 잘했기 때문이지만 진 것은 선수들 잘못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체육부장인 최윤현 교사도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아주기 위해 노력했다. 공식 경기가 끝나면 실수를 한 선수 한 명을 불러내 문화상품권을 주며 다음 경기를 격려했다.

교사들이 이렇게 하니 선수들도 서로를 비방하지 않았다. 이런 문화는 원동중의 최대 약점인 리스크 관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원동중의 약점 중 하나는 한 번 실수가 생기면 팀 전체가 순식간에 무너진다는 것이었는데 실수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는 문화가 형성됨으로써 선수들은 실수하더라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또 감독은 선수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기 위해 애썼다. 사실 선수 대부분은 초등학교 시절 후보였다. 과거에는 훈련에서 배제되거나 주류 선수에서 탈락하는 경험을 했지만 원동중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감독과 코치가 맨투맨으로 학생들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매 경기 골고루 기회를 주며 주전으로 활약하게 했다. 당장에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믿고 기다리자 초반에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하던 아이들이 강심장으로 변했다. 이전에는 한번 경쟁에서 밀리면 지레 포기했던 선수들도 악착같이 훈련을 견뎌냈다. 팀 전체에 오기와 자신감이 생겨나면서 개인 역량은 눈에 띄게 늘었고, 팀 전체의 분위기와 조화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 야구 명문고서 일찌감치 스카우트 손길

창단 초기 리틀야구팀과의 경기에서 콜드패를 당할 정도로 고전하던 원동중은 어느새 중학 야구 최강팀 중 하나가 됐다.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의 학생들이 입단 테스트를 보기 위해 원동중을 찾고, 고등학교 감독들은 서로 원동중 선수들을 데려가려는 상황이다. 야구부 3학년생의 진로는 일치감치 정해졌다. 현재 7명이 경남고, 대구고, 부경고 등 야구 명문고 진학이 확정됐다. 유명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가운데는 원동중 2학년 선수를 벌써부터 찜해두고 스카우트 작업을 펼치기도 한다.

원동중 야구부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최고 수준의 선수들, 탄탄한 인프라, 막대한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자원은 원동중에 축복이 됐다. 열악한 환경은 학생, 학교, 학부모, 지역주민의 마음을 모으게 했고, 선수들의 의지를 불태우게 했다. 선수들은 경기에서 졌을 때 자발적으로 단체삭발을 하기도 했다. 다음 경기부터는 지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시였다. 실수한 선수를 혼내거나 타박하지 않고 격려하는 문화도 열정과 창의적 플레이의 원동력이 됐다. 또 다른 이유는 원칙의 위력이다. 일부 학부모들은 초반 6개월 동안 기본기 훈련만 시킨 것, 공부하는 야구선수 만들기 정책 등에 반발했지만 학교 측은 원칙을 고수했다. 계속해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선수들이 팀워크를 다지고 하나의 방향성을 갖도록 도왔다. 기본 원칙에 대해서만큼은 양보하지 않는 것, 고(高)성과 조직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폐교#시골학교#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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