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일찍 출퇴근… 박대리 2년 만에 ‘육아전문가’ 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0일 03시 00분


[저녁을 돌려주세요]⑨근로복지공단의 탄력근무제

탄력근무제로 이른 아침에 출근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왼쪽 사진). 근로복지공단 보험재정부 김복남 과장이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19일 오후 6시 반에 퇴근을 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각자 사정에 맞게 출퇴근 시간을 조절하는 탄력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제공
탄력근무제로 이른 아침에 출근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왼쪽 사진). 근로복지공단 보험재정부 김복남 과장이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19일 오후 6시 반에 퇴근을 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각자 사정에 맞게 출퇴근 시간을 조절하는 탄력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제공
《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 박동식 대리(36)는 동료들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한다. 딸(5)을 챙기기 위해 1시간 일찍 출근하고, 1시간 일찍 퇴근하는 탄력근무제를 이용하고 있어서다. 박 대리가 일찍 출근하는 대신 딸의 아침 식사와 유치원 등원은 은행원인 부인이 챙긴다. 오후 5시에 퇴근한 박 대리는 곧장 유치원으로 가 딸을 데리고 와서 저녁을 챙겨준다. 이후 집에서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부인이 오후 8시쯤 퇴근해서 함께 아이를 돌본다. 꼭 참석해야 하는 저녁 약속이나 회식이 생기면 미리 부인에게 알려 퇴근시간을 조정하도록 협조를 구한다. 업무가 몰리는 시기에는 오전 6시에 출근해 집중근무를 하거나 주말에 출근해 일을 하면서 야근을 피한다. 박 대리는 2년간 이렇게 탄력근무제를 통해서 ‘육아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는 “동료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이런 근무 방식을 계속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 재택근무로 경력 단절 방지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직원들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해 2005년부터 탄력근무제를 운영하고 있다. 본인 일정에 따라 출근시간을 오전 7∼10시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고, 퇴근시간은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출근시간에 맞춰 조정할 수 있다. 지난달 기준 총 1036명이 이용하고 있을 정도로 직원들 호응도 높다.

‘워킹맘’들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한 재택근무제도 있다.

서울지역본부 이명휘 과장(39)은 둘째가 태어난 7월부터 3개월간 육아휴직을 한 뒤 공단 허가를 얻어 지난달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이전에는 아이들 아침 식사를 챙겨주고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준 뒤 출근을 하느라 오전 6시에는 일어나야 했지만, 재택근무로 아침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언니 손을 빌리지도 않게 됐고, 저녁에도 틈틈이 업무를 볼 수 있어 효율도 높아졌다.

이 과장은 “육아휴직을 할 때보다 소득이 늘어 가계에도 큰 보탬이 된다”며 “육아 기간에 경력이 단절되지 않고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육아, 간병, 건강 등의 목적으로 전일제 근로와 시간제 근로를 자유롭게 전환하는 ‘전환형 시간제 근로’도 2009년부터 이미 시행하고 있다. 2012년에는 하루 6시간을 일하는 정규직 시간제 근로자 60명을 채용해 이 가운데 55명이 본인 희망에 따라 전일제로 전환하기도 했다. 또 기존 전일제 근로자 중에서도 7명이 육아와 건강을 이유로 주당 15∼30시간만 일하는 시간제 근로로 전환해 일을 하고 있다. 이들도 본인이 원하면 전일제로 언제든지 전환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전환형 시간제 근로가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정착에 필수적이라고 보고 지난달 관련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직원들의 경력 단절 우려를 없애주고, 노동생산성도 높이려면 업무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관련 제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 외부에서도 모든 업무 처리 가능

근로복지공단은 2007년부터 ‘가정의 날’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은 오후 6시 반까지 모든 직원이 퇴근해야 하며 초과 근무를 해야 할 사유가 있으면 사전에 보고를 해야 가능하다. 또 목요일 오전에는 보고서를 내거나 받지 않도록 해 수요일에 불가피하게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을 원천 차단했다.

올해 2월부터는 음주문화 개선 캠페인을 벌여 술을 마시지 않는 회식 문화를 권장하고 있다. 또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더라도 △대화하면서 천천히 마시기 △약하고 순하게 마시기 △술잔 돌리지 않기 △2차 가지 않기 등의 음주 요령을 만들어 실천을 독려하고 있다.

특히 올해 3월 울산으로 본부를 이전하면서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스마트 워크시스템도 개편해 전국 55개 지사 및 지역본부와 스마트워크센터에서도 모든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대부분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은 외부에서 자신의 업무프로그램에 접속하려면 사전 인증 노트북 등 제한된 기기로만 접속이 가능했다. 결국 외부에서는 인터넷망을 이용한 간단한 업무만 볼 수 있고 모든 업무를 100% 처리하기는 어려워 업무 효율성이 떨어졌다.

반면 근로복지공단은 외부에서 일할 때도 본인의 업무용 PC와 업무용 프로그램에 100% 접속할 수 있도록 했다. 본인이 소속된 지사가 아닌 다른 지사에서 잠깐 업무를 볼 때도 접속이 가능하다. 본인 사무실이 아닌 외부에서도 사무실에서 일할 때와 동일한 업무를 모두 볼 수 있는 것이다. 총 7000여 대의 업무용 PC에 이 같은 시스템을 적용해 거의 모든 직원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 다만 외부에서 접속할 경우 보안이 약화될 수 있는 만큼 휴대전화를 통해 본인을 인증하는 방식으로 강화했다.

공단 관계자는 “외부에서도 사무실과 동일한 업무를 100% 볼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스마트워크 시스템을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며 “전자영상회의시스템도 구축해 각종 회의도 시간 낭비 없이 실시간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몸도 마음도 재충전돼야 생산성 높아져”▼

유연근무 도입 이재갑 이사장 강조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재충전이 없으면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갑 근로복지공단 이사장(56·사진)은 1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가정 양립 문화가 정착되면 조직 성과는 당연히 높아진다”며 이렇게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연근무제가 상당히 잘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기에는 실제 이용하는 직원이 적고, 이용을 하더라도 동료나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등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유연근무제 같은 제도는 정착될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기관장이 의지를 갖고 일관되게 추진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연근무제 시행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업무 특성상 야근이나 휴일 근무, 장시간 근로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유연근무제가 정착되고 가정의 날, 술 없는 회식 등의 캠페인이 확산되면서 내부 소통이 활발해지고 서로 신뢰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 직원들의 자발성과 업무 만족도도 높아졌다.”

―편한 공공기관에서 더 편해지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 근로자 보호, 저임금 근로자 복지 등 어려운 계층을 위한 일을 하기 때문에 초과근무가 상당히 많고 항의 민원도 많은 곳이다. 유연근무제는 더 편해지려고 도입한 것이 아니라 업무 효율화를 통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또 결과적으로 여직원들의 경력 단절을 줄이는 효과도 있었다.”

―근로자들의 노후 보장을 위해 퇴직연금 사업을 하고 있는데….

“30명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취약계층 근로자들을 위한 퇴직연금 사업을 하고 있다.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3만2637곳이 근로복지공단 퇴직연금에 가입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수수료를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고, 가입 절차를 간소화해서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들도 안심하고 노후 설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산업재해 판정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있다.

“공정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1월부터 전문 진단 제도를 도입하고, 자문의사회의 판정을 강화했다. 55개 지사 단위로 쪼개져 있는 심사체계는 권역별로 개편하고, 요양 과정에서도 중간 평가를 실시해 적극적인 재활을 유도할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모든 업무를 수행하는 산재보험 판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해 나가겠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근로복지공단#탄력근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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