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짜리 아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있다. 일본 장난감업체인 ‘다카라토미’가 1950년대 말부터 생산하고 있는 ‘토미 기차’ 세트다. 플라스틱 레일 위로 건전지를 넣은 기차가 움직이면 아들은 “기차, 기차”를 외치며 손뼉을 친다.
다카라토미는 단순히 기차 세트만 팔지 않는다. 기존 세트에 들어가 있는 원형이나 교차형 레일에 붙여 입체형 등 다른 형태의 철로를 만들 수 있도록 레일을 별도로 판매한다. 기차도 고속철도용, 산악용, 도심통근용 등 다양한 모델을 따로 판다. 별도 판매 품목으로는 터널이나 철교, 역사(驛舍), 벤치 등 액세서리도 있다.
일단 토미 기차 세트를 산 어린이들은 싫증이 나면 레일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유형의 기차를 사는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별도 품목을 사서 다양한 형태의 철도 환경을 꾸미기 위해서다. 3개월 정도 기차 세트를 갖고 놀던 아들도 장난감 가게에 갈 때마다 확장용 레일이나 새 기차 모델을 사 달라고 조른다. 20여 년 전 토미 기차를 가졌던 조카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경영 전문가들은 다카라토미의 확장용 제품 판매가 현재 정보기술(IT)업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생태계 조성 전략’의 기초적 모델이라고 입을 모은다. 생태계 조성 전략은 일단 판매한 제품에서 파생된 서비스나 부가 제품을 추가로 판매할 수 있는 기반(생태계)을 만드는 것이다. 일단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소비자가 다른 기업 제품으로 눈을 돌리기 힘들다. 기존에 갖고 있는 제품을 기반으로 부가적 아이템을 사는 것이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토미 기차가 반세기 이상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플이 MP3플레이어 ‘아이팟’을 선보인 후 음악을 온라인 장터에 모아 판매하고 재생하는 ‘아이튠스스토어’를 만들어 세계시장을 석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생태계를 구축한 기업은 저가 제품이 공세를 펼쳐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고객 충성도가 높아 이탈하는 고객이 많지 않다. 최근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고전하는 것과 달리 독자 생태계(iOS와 애플 앱 스토어)를 가진 애플이 선전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삼성전자는 하드웨어로는 세계 최고 기업이다. 반면 생태계 조성 측면에서 보면 별로 내세울 게 없다.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드웨어만으로도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탓이다. 그동안 절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올해 2분기(4∼6월)이후 실적이 곤두박질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하드웨어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임직원이 적지 않다. 자칫 한때 하드웨어 거인이었다가 사라진 노키아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면서 생태계 조성에 대한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다. 이제는 절박함이 생겼다는 얘기다. 다른 기업 인수에 소극적이었던 삼성전자가 최근 들어 외국 소프트웨어 회사를 잇달아 인수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번 주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단 인사가 예정돼 있다. 인사와 맞물려 삼성전자 조직 개편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생태계 조성을 위해 새로운 경영진과 조직이 어떤 묘수를 내놓을지 궁금하다. 현재 삼성전자는 ‘애플 웨이’와 ‘노키아 웨이’로 나뉘는 분기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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