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기업이라 하면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비범한 능력과 창조성을 가진 기업인이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같은 회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대니얼 아이젠버그 교수는 소수의 신화적인 기업 성공 스토리 때문에 사람들이 성공기업의 조건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됐다고 비판한다. 그는 성공한 기업의 표본이 반드시 구글이나 애플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며 경영자가 모두 스티브 잡스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 성공한 기업들을 분석해 보면 혁신성이나 남들이 따라하기 힘든 전문성보다는 오히려 남을 따라하는 ‘카피캣’ 전략으로 시장을 석권한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글로벌 소비재 기업인 P&G의 일본 진출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1980년대 의기양양하게 일본 시장에 진출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지의 경쟁업체를 적극 관찰하고 모방하며 배우는 전략으로 수정해 비로소 일본 시장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미 위스콘신대의 하트 포센 교수와 KAIST 이제호 교수 등의 연구도 기업 간 모방의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특히 꼭 완벽하게 남을 베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좀 어설프고 불완전하게 베낄 때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또 모방 행위가 완전히 금지되는 환경보다는 적당하게 서로 모방하고 모방당하는 환경에 있을 때 산업 전체적으로도 장기적 성과가 좋았다. 기업들이 서로를 관찰, 주시할 기회를 갖게 되고 이것이 자극제가 되는 것이다.
물론 모방만으로는 결코 경쟁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 시장의 선두기업들에 후발기업의 모방 행위는 큰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절한 모방은 기업의 활동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배우고자 하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숨어 있던 기업의 내재된 역량을 발견하는 계기가 생긴다. IBM, 삼성 같은 세계적 기업들도 모방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영역을 개척했다. ‘모방은 무조건 나쁘다’라는 생각은 착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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