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기업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는 보통 ‘선거자금 기부’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기업 입장에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활동인 데다 연구하는 입장에서 성과를 측정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반면 성과 측정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장기적 기업 로비 활동’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기업들이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벌이는 장기 로비 활동은 정치적 대립을 초래하는 데다 정책을 실행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려서다.
왜 기업은 당장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정치적 활동에 막대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까?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 답을 찾기 위해 하버드대 경영대 윌리엄 커 교수 등은 2004년에 상정된 미국의 비자개혁법 관련 사례를 검토했다. 이들이 검토한 미국 상원 공공기록보관소 자료는 로비 금액과 대상, 그리고 정책 성향이 구체적으로 명기돼 있다.
분석 결과 실제로 1998∼2006년 한 해 이상 로비 활동을 한 기업은 3260개 상장사의 약 10%인 327개였다. 또한 로비 활동은 회사 규모와 관련돼 있다는 특징이 발견됐다. 매출액, 종업원 수, 자산, 연구개발비를 따져봤을 때 이 모든 항목에서 규모가 큰 회사들이 로비 활동을 할 확률이 높았다. 로비를 했던 경험이 있는 기업들은 계속 로비를 하는 경향도 확인됐다. 올해 로비를 한 회사가 내년에도 로비를 할 확률은 92%였다.
이런 경향은 정책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동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장기적인 로비 활동이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들은 ‘선불투자비용’과 ‘경험에 대한 수확’ 개념을 사용했다. 로비 활동을 시작하는 데 드는 선불투자비용이 크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장기적인 로비 활동에 착수하기 어렵고, 로비 활동으로 확대된 정관계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과 효용 역시 증가한다는 의미다. 대기업의 영향력이 중소기업보다 계속 커지는 이유다. ‘대기업의 정책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한국에서도 이 연구는 그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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