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신차 중에 이렇게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모델이 있었을까. 현대자동차의 준대형 세단 ‘아슬란’은 정체성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그랜저의 디자인을 바꾸고 실내 정숙성을 높인 정도의 모델을 과연 신차로 봐야 할 것인지. 그랜저의 가격을 높여 받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은 아닌지. 채널A의 자동차 프로그램인 ‘카톡쇼S’는 과연 아슬란이 존재가치가 있는 모델인지 냉철하게 분석을 했다. 업그레이된 아슬란의 정숙성
그랜저와 같은 차체, 엔진, 변속기 사용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랜저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카톡쇼에선 차체 바닥에 붙은 소음방지 커버, 휠하우스 커버의 재질, 시트 아래와 트렁크 바닥에 도포된 방음·방진재, 엔진룸 등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하지만 그랜저와 아슬란의 차이점을 발견하진 못했다. 방음·방진재의 재질과 모양, 크기, 부착 위치까지 같았다. 현대차에서는 소음 저감을 위해 아슬란에 들어간 휠의 스포크와 인테이크 그릴의 디자인까지 신경을 썼다고 했지만 미미한 부분이어서 그랜저와 정숙성은 거의 같을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도로에서 주행 테스트를 한 결과 아슬란의 정숙성은 확실히 그랜저보다 한 등급 위였고 ‘제네시스’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이유는 이중접합 차음 유리 때문이었다. 전면과 측면에 들어간 이 유리는 두 겹의 유리를 접합시켜 일반 안전유리보다 두껍게 만든 것인데 차음 성능이 뛰어나 프리미엄 브랜드의 대형 세단들은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음과 엔진음, 풍절음 등이 모두 감소해 그랜저와 차별성을 보였다. 시동을 걸어놓고 정차 상태에서 실내 소음을 측정한 결과 아슬란은 38dB로 그랜저의 40.5dB보다 2.5dB이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랜저와 비슷한 듯 다른 주행 감성
주행 감성에서도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보였다. 그랜저가 승차감을 우선시하는 부드러운 서스펜선 세팅인 데 비해 아슬란은 안정감을 약간 높였다. 물론 아슬란도 승차감을 우선시하는 성향이 강하지만 그랜저에 비해 좌우 회전 시 차가 기울어지는 각도가 적었으며 핸들링도 약간 좋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때문에 노면이 좋지 않은 시내 도로를 지날 때면 그랜저보다 충격파가 더 강하게 전달됐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선 속도를 높여 커브길을 돌아나갈 때 그랜저보다 평형 유지 능력이 좋아 심리적인 안정감이 한층 높았으며 노면의 충격도 잘 걸러줬다. 시속 150km에서 노면의 굴곡을 만났을 때 차체가 아래위로 움직이는 여진을 빨리 잡아주는 능력도 그랜저를 뛰어넘었다. 전반적으로 고속주행에서 타이어가 노면을 잘 따라간다는 느낌이었다. 독일차의 고속주행 능력에 익숙한 운전자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시내주행보다는 고속주행에 더 적합하게 세팅이 된 셈이다.
그런데 브레이크에선 여전히 부족한 면을 드러냈다. 17인치 대형 디스크 브레이크가 들어갔다지만 반복제동 실험에서 밟은 양에 비해 차가 더 밀려나는 페이드 현상이 빨리 찾아와 아쉬웠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 가속시간은 3.0 모델의 경우 7.8초로 측정돼 배기량 대비 평범했다. 연료소비효율은 서울시내 주행에서 L당 7km 안팎, 고속도로 시속 100km 정속주행에선 L당 14km 안팎으로 나왔다. 그랜저의 튜닝 버전인 아슬란
기본형 아슬란(3990만 원)은 그랜저 3.0 익스클루시브 트림(3595만 원)보다 약 395만 원이 비싸다. 그 대신 아슬란은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8인치 스마트 내비게이션 시스템, 이중접합 차음유리 등 10여 가지 편의장치가 더 들어가 있다. 추가된 편의장치 가격이 최소 300만 원 정도인 데다 그랜저와 차별되는 무형의 가치를 더하면 가격 책정은 합리적인 편이다.
이 때문에 그랜저는 2.4L급 전용모델로 남고 3L급의 판매는 고스란히 아슬란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차기 그랜저에선 아예 3L급 트림이 사라지고 2.4L급 전용 모델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예상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결론적으로 그랜저 3.0L 모델에 편의장치를 조금 더 넣어 구입할 소비자라면 아슬란을 사는 게 이득이라는 계산이다.
차의 등급을 떠나 디자인을 보면 아슬란과 그랜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랜저는 화려하지만 산만했던 현대차의 과거 디자인 콘셉트 ‘플루이딕 스컬프처’가 적용됐지만 아슬란은 제네시스와 ‘LF쏘나타’에 입혀진 담백한 디자인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을 따르고 있다.
플루이딕 스컬프처는 강한 바람이 조각품처럼 깎아 놓은 조형물을 뜻하는 신조어인데, 사실 현재의 ‘2.0’ 디자인 콘셉트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억지로 용어와 실제 디자인을 끼워 맞춘 인상이다. 제네시스와 LF쏘나타 아슬란의 어느 부분을 봐도 바람이 깎은 듯한 조형미는 느낄 수 없다. 그 대신 아우디처럼 단순하고 기계적이며 신뢰감과 안정감을 주는 방향으로 180도 돌아섰다.
그래서 아슬란의 인상은 차분하고 단정하며 크기보다 작아 보인다. 실내도 보수적인 직선형 디자인으로 바뀌어 시원하고 넓은 인상을 준다. 현대차가 새롭게 추구하는 절제와 균형미를 소비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제네시스에서는 성공했지만 LF쏘나타는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슬란은 너무 흔해진 그랜저가 싫고, 수입차나 제네시스 이상의 ‘큰 차’로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고소득 전문직 소비자들에게 안성맞춤으로 보인다. 과연 그런 소비자들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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