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1일 셋톱박스 제조업체 홈캐스트는 2013년 멕시코에서 수주한 장비공급 계약금액을 35억9770만 원에서 0원으로 정정한다고 공시했다. 현지 사정으로 본계약이 무기 연기됐다는 이유에서다. 전날 2014년 증시 폐장으로 거래가 없는 틈을 타 악재 공시를 한 것이다.
연말 증시 폐장 이후 계약 해지, 임직원 횡령 같이 기업에 불리한 내용을 은근슬쩍 내놓는 ‘세밑 올빼미 공시’가 이번에도 반복됐다. 전자저울 제조업체인 카스는 31일 오후 대표이사의 횡령 혐의가 확인됐으며 이로 인해 대표이사가 변경됐다는 공시를 올렸다. 횡령 규모는 11억3000만 원으로 자기자본의 2.5%가 넘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새해 첫 거래일인 2일부터 이 회사의 주식 거래가 정지된다는 공시도 함께 떴다.
올빼미 공시 중에는 홈캐스트처럼 이전에 발표했던 판매·공급 계약의 규모가 축소됐거나, 계약이 해지됐다는 내용이 특히 많았다. 스틸앤리소시즈는 대우인터내셔널 등과 공동으로 베트남 현지에 자본금 1000만 달러 규모의 신설법인을 설립하는 사업이 취소됐다는 공시를 냈다. 울트라건설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개시 이후 지급보증이 중단돼 축소된 사업을 알렸다. 대기업인 포스코 계열의 포스코ICT는 1413억 원 규모의 리비아 주택인프라 공사가 현지 사정으로 무기 연기됐다는 공시를 내놨다.
공시 규정상 판매·공급 계약금액이 전년 매출액의 10% 미만이면 공시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계약을 맺을 때 주가를 띄우려고 시키지도 않은 공시를 했다가 연말에 슬그머니 계약 축소나 해지를 알리는 기업이 여전히 적지 않다.
올빼미 공시의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새해 증시가 개장하자마자 해당 종목의 주가가 급락해 투자자가 손해 보는 일이 많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행태가 반복되면 증시 전체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얌체 기업만 탓할 게 아니라 금융당국은 올빼미 공시로 인한 투자자의 피해를 막을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투자자도 평소에 기업실적을 꼼꼼히 분석해 선별투자에 나서야 뒤늦은 세밑 악재 공시의 피해를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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