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을 하면서 주의를 끌지 않는다는 건 쉬운 게 아니야. 자신의 말에 의해 거기에 존재하면서도 들리지는 않는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것은 절묘한 솜씨가 필요한 거라고! ―무의미의 축제(밀란 쿤데라·민음사·2014년) 》
세상에는 말이 많은 사람과 말이 적은 사람이 있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 때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말수가 많고 적음은 사람의 ‘기질’이다. 어떤 모임에 말이 많은 이와 말이 적은 이가 함께 있다고 가정하자. 말하는 걸 즐기는 이에게 입을 다물라 강요한다면 그는 모임 내내 말이 하고 싶어 몸을 배배 꼴 것이다. 마찬가지로 말이 적은 이에게 무엇이라도 말을 하라 부추긴다면 그는 화젯거리를 찾으려 진땀을 흘릴 것이다.
말이 많은 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늘 말을 권한다. 말수가 적은 이들이 술자리 등에서 무탈하고 조용히 술과 식사를 즐기고 있으면 테이블 곳곳에서 “말 좀 해요”라는 요구가 이어진다. 말이 적은 이들이 말수가 많은 사람들에게 “말 좀 하지 마세요”라고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보면 수다는 보편적으로 침묵보다 힘이 센 것 같다.
하지만 소설 ‘무의미의 축제’는 침묵이 갖는 수수께끼와 같은 힘에 관심을 갖는다. 소설에는 늘 분위기를 주도하고 남을 웃기려 애쓰는 ‘다르델로’와 목소리가 작아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카클리크’라는 인물이 나온다. 소설 속 다른 등장인물들은 카클리크의 침묵이 듣는 이에게 재치 있거나 똑똑한 대답을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고 설명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융화하는 데에 서로 흉금을 트고 말을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르델로여야 할 필요는 없다. 세상의 모든 다르델로들에게 원하는 만큼 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모든 카클리크들에게도 눈치 보지 않고 침묵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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