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의 심리적 지지선이던 배럴당 50달러가 무너지면서 연초부터 한국 건설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중동 국가들이 저유가 장기화에 따른 재정 수지 악화에 대비해 석유화학, 플랜트 등의 발주를 줄일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국의 건설사들은 올해 해외 수주 목표액을 낮춰 잡기 시작했다.
8일 건설 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 급락 등 해외 건설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대형 건설사 상당수는 올해 해외 수주 목표액을 지난해보다 낮춰 조정하고 있다.
지난해에 해외에서 총 96억5000만 달러(약 10조6150억 원)를 수주해 국내 건설사 가운데 2위를 차지한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 목표액을 지난해의 71.4% 수준인 68억8600만 달러로 낮췄다. 지난해 해외 수주액이 66억8000만 달러로 업계 3위였던 SK건설도 목표액을 65억 달러로 다소 줄여 잡았다.
SK건설 관계자는 “숫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지난해 계약을 체결한 사업이 올해 반영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올해 실제 수주 규모는 더 줄어들 것”이라며 “해외 리스크를 감안해 보수적으로 목표를 잡았다”고 말했다.
올해 경영 목표를 아직 확정하지 못한 건설사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해외 수주액 업계 4위(65억4000만 달러)였던 삼성물산도 지난해보다 목표치를 낮게 잡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입찰이 예고된 프로젝트에 당장 변동은 없으나 저유가가 지속될 경우 영향이 있을 수 있어서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GS건설 관계자는 “아무래도 수주 환경이 좋지 않아 목표액이 늘어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GS건설은 지난해 59억5000만 달러를 수주해 업계 5위였다. 지난해 해외 수주액 1위를 차지한 현대건설은 23일경 목표액을 내놓을 계획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지난해 수주액(110억7000만 달러)과 동일한 목표액을 설정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수 대림산업 사장은 6일 열린 ‘2015 건설인 신년 인사회’ 행사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 중동 수주 규모가 줄고 공사가 지연되는 곳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근포 한화건설 사장도 “유가 하락으로 발주처의 사정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제 유가 급락으로 건설사들의 실적 악화가 예상되자 건설주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현대건설 주가는 6일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던 2008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4만 원 선이 붕괴된 뒤 8일에도 3만9050원에 머물러 있다. 대림산업, GS건설의 주가도 최근 하락세다.
건설사들은 대체 시장인 동남아 국가들을 공략해 저유가 리스크를 돌파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국내 건설사들에 제2의 시장인 아시아에서 투자 개발형, 금융 조달형 등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을 찾고 있다”며 “시장을 다변화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미국이 올해 중순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동남아 신흥국에 유입됐던 달러가 미국으로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재정 수지 악화를 우려한 동남아 신흥국들도 공사 발주를 미루거나 아예 취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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