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7540명 늘어난 은행 정규직… 논란은 진행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3일 03시 00분


정규직 전환때 경력 인정 못받고 신설된 직군따라 급여체계도 달라
비정규직 줄여 고용의 질 높였지만 인건비 늘어 신규채용 감소 우려도

국민은행의 한 지점에서 창구직원으로 일하는 김모 씨는 지난해 1월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 직원으로 전환됐다. 정규직이 되면서 급여도 오르고 승진 기회도 생겼다. 무기계약직일 때도 고용은 안정돼 있었지만 정규직이 되니 신분이 달라진 거 같아 직장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1월 김 씨를 비롯해 4100명의 무기계약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은행권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이 다른 업종으로 확산돼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한국 고용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은행권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들은 여전히 기존 정규직과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어 ‘무늬만 정규직’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인건비 부담이 높아져 은행권의 수익을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대졸 신입직원 채용이 줄어드는 역효과도 우려된다.

○ 은행들 앞다퉈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

은행권에서는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이뤄져 왔다. 비정규직으로 2년 넘게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이미 2007년 정규직 전환을 시작한 우리은행을 비롯해 신한은행, KB국민은행 등 대부분 은행에서 창구직원들이 정규직이 됐다. 하나은행,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등도 무기계약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다.

대규모 정규직 전환에 따라 은행권의 정규직 수도 크게 늘었다. 은행 경영공시에 따르면 국내 17개 은행의 정규직 은행원 수는 금융위기가 일어난 2008년 9월 말 9만8396명에서 지난해 9월 말 11만5936명으로 17.8% 늘었다. 지난해 11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하나, 외환, 한국SC 등 아직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은 은행들도 올해부터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정규직 은행원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은행은 기존 정규직과 다른 새로운 직군 또는 직급을 만들어 무기계약직을 흡수했다. 지난해 1월 4100명의 무기계약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국민은행은 기존 L1∼L4의 정규직 직급에 L0 직급을 신설해 무기계약직을 편입했다. 2007년 은행권에서 가장 먼저 정규직 전환을 실시한 우리은행은 개인금융서비스, 고객만족, 사무지원 등 3가지 직군을 신설했다.

은행에 따라 별도의 자격시험을 치르면 기존 정규직과 같은 직군에 소속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200여 명이 시험과 면접을 통과해 기존 정규직 직원과 같은 직군으로 옮겼다. 하지만 급여는 다르다. 기존 정규직은 호봉제를 적용받지만, 비정규직 출신은 평가에 따라 연봉을 결정한다.

○ 정규직 전환 효과에 대한 엇갈리는 시각

이 때문에 은행권의 정규직 전환 효과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린다. 비정규직을 줄여 고용의 질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은행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 수익을 악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기계약직의 경우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정년을 보장받지만 승진 기회나 복지 혜택이 제한돼 있다. 이들을 정규직화하는 것은 고용의 안정성과 질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급여나 복지 수준이 낮아 생산성이나 열의가 떨어진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은행에 인건비 부담이 다소 커질 수 있지만 직원들의 생산성이 높아져 궁극적으로는 은행의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국내 시중은행 지점에서 계약직으로 6년간 근무하다 정규직이 된 김모 씨는 “은행 내부 규정 때문에 계약직 직원들은 펀드나 일정 금액 이상의 금융 상품은 판매할 수가 없었는데 정규직이 되면서 기회가 늘어나 만족감도 늘었다”고 말했다.

반면 은행의 수익성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규모 정규직 전환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 때문에 신규 채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나금융그룹 관계자는 “노조의 주장대로 외환은행 계약직 2000명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대졸 정규직 직원 2000명을 신규 채용하는 것과 같아 인건비 부담 때문에 신규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민기 minki@donga.com·송충현·백연상 기자
#은행#정규직#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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