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올해부터 대대적인 ‘개방 전략’을 펼친다. 다른 기업도 삼성전자 플랫폼, 소프트웨어와 같은 자산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한편 대대적인 투자와 인수합병(M&A)에 나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 참석한 윤부근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으로부터 이런 내용을 포함한 동영상 보고를 받았다. 》
미국 경제주간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이번 CES 최고 상품’이라고 꼽았던 ‘삼성의 개방’이 사실상 이 부회장의 올해 첫 전략 행보인 셈이다. CES에서 삼성전자는 “사물인터넷(IoT) 플랫폼을 외부에 개방해 모든 기업과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 ‘폐쇄적 추격자’에서 ‘열린 1위’로
삼성전자는 “다음 달 타이젠 운영체제(OS)를 적용한 스마트TV를 선보인다”고 14일 밝혔다. 타이젠TV는 이전까지 TV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다른 기업 가전제품도 타이젠TV와 연동할 수 있도록 개방돼 있다는 점이다. 또 다음 달부터 국내 시장부터 순차적으로 판매를 시작하는 새 초고화질(UHD) TV 라인업 ‘SUHD TV’ 화면 규격을 ‘UHD 얼라이언스’를 통해 경쟁사에도 공개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개방 전략이 가시화된 것은 지난해 8월 개방형 IoT 플랫폼을 보유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인 스마트싱스를 인수하면서다. 삼성전자는 스마트싱스 인수 후에도 경영권을 기존 경영진에 그대로 맡기면서 외부 기업에 개방된 구조를 유지했다.
이런 방침은 자체 역량으로만 성장을 구가했던 지금까지 모습과는 다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TV, 스마트폰 등 모든 분야에서 후발주자였지만 스스로 경쟁력을 끌어올려 역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동차와 같은 다른 산업 분야는 물론이고 직접 생산을 하고 있는 가전 분야의 다른 기업 제품도 삼성전자 타이젠이나 스마트싱스 플랫폼과 연동할 수 있게 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애플도 원하기만 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입장이 바뀐 삼성의 1위 수성(守成)을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사물인터넷(IoT) 시대에는 다른 제품과 호환이 되지 않으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삼성전자 플랫폼이 중심이 되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참여 기업이 늘어날수록 삼성전자 입지는 강화된다.
김현석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장(사장)은 기자와 만나 “예를 들어 스마트카 분야에서 삼성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자동차를 직접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개방이 필요한 것”이라며 “플랫폼 개방과 협업, 외부 기업 투자 등이 모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 구글, 테슬라, 퀄컴은 이미 열어
삼성전자의 변신은 제조업계 1위라는 기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다. 지난해 3분기(7∼9월) 기준 삼성전자의 세계 TV 시장 점유율은 25.4%로 2위와 10%포인트 이상 격차를 벌리고 있다. 스마트폰은 중국 시장에서 부진했지만 24.7%의 점유율로 여전히 압도적인 세계 1위다. 생활가전 분야도 선두가 눈앞이다.
김 사장은 “개방 전략은 1위가 아니면 시도하지 못한다”라며 “1위가 문을 열면 다른 기업들이 들어오게 된다”고 말했다. 이미 삼성전자 생태계에 들어오겠다고 밝힌 기업도 있다. 미국 통신기업 AT&T 랜들 스티븐슨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커넥티드 카 서비스를 발표하며 “최고의 파트너인 삼성전자 플랫폼에 우리 서비스를 호환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선두 기업이 자신의 생태계를 공개해 규모의 경제와 다양한 기회를 얻고 후발주자들이 적응하는 동안 또 다른 생태계 조성에 나서는 ‘무빙 타깃(moving target·움직이는 목표)’ 전략”이라며 “이미 각 분야 1위 기업들의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 2월 출시 ‘타이젠TV’… 다른회사 家電과 연동 ▼
삼성전자 개방 전략
대표적인 기업은 인터넷 공룡 구글이다.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완전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대신 안드로이드에 깔려 있는 앱 장터 ‘구글 플레이’나 웹브라우저 크롬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는다. 안드로이드를 쓰는 기업이 늘어날수록 매출도 커지는 구조다. 또 새로운 시장에는 스타트업 인수를 통해 진출한다.
전기차 분야 1위 기업 테슬라는 지난해 6월 전기배터리, 충전 기술 등 모든 특허를 무상 개방했다. ‘통 큰 기부’처럼 보이지만 전기차 산업 전체 성장을 통한 매출 확대를 노린다. 도요타가 이번 CES에서 연료전지 관련 특허 5680건을 개방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목적이다. 모바일 AP(두뇌 역할의 반도체) 시장 1위인 퀄컴은 IoT 개방 협의체 ‘올신 얼라이언스’를 주도하며 미래 반도체 시장까지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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