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파문은 뒤끝이 더 고약했다. 정부의 설득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었다면 뒤늦게라도 더 설득했어야 했다. ‘꼼수 증세’였다면 솔직히 사과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정부 여당이 세법을 고쳐서 이미 걷은 돈까지 소급해서 돌려주기로 한 것은 예상치 못한 하수였다.
납세의 의무는 불균형적이다. 계층별로 내는 세금이 다르다. 낸 만큼 수혜를 입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징세 전에 신중해야 한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원칙이 조세법률주의로 승계돼 세목은 물론이고 세율까지 법으로 정하는 게 이 때문이다.
일단 세제(稅制)가 정해지면 안정적으로 집행돼야 한다. 조세가 흔들리면 국가가 흔들린다. 안정적인 징세는 통치의 근간이다. 현 정부는 이 원칙을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과거 정권에서도 포퓰리즘이 종종 등장했다. 하지만 한번 낸 세금을 돌려주겠다고 법을 고친 적은 정책적으로 경차 유류세를 환급해준 것 외에는 처음이다.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청와대가 코너에 몰린 뒤라 청와대가 급했다고 한다. 서둘러 민심을 다독여야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여당이 부채질을 했다. 그런데 지나놓고 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을 챙기느라 조세 원칙을 내팽개쳐 버린 듯한 느낌이 남는다. 정부 여당에서는 경제부총리가 정치인 출신이라 대응이 빨랐다는 호평도 나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영혼 있는 경제 관료라면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진 않았을 것 같다. 정치인이 경제 수장(首長)을 하는 게 꽉 막힌 경제학자보다는 낫다고 보지만 이번에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파문의 배경에는 박 대통령의 복지 공약이 있다.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웠지만 재원은 중산층 이상에게 돈을 더 걷는 방식으로 충당하려 했다. 대신 누구에게나 혜택이 가는 보편적 복지를 추진했다. 그래서인지 연말정산에서 돈을 더 토해내는 사람들도 징세 방식에는 화를 냈지만 복지 문제에는 별 말이 없는 것 같다. 억대 연봉을 받는 고소득자도 자녀를 공짜로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 이를 뒤집어 말하면 증세의 명분에서 보편적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만큼 정부가 시간을 갖고 더 설득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연말정산 파문으로 현 정부는 물론이고 차기 정부에서도 증세를 논하기 어렵게 됐다. 납세자들은 목소리를 조금 높이면 정부가 물러선다는 것을 체험했다. 이번에는 거위의 깃털이 많이 빠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정부가 어이없이 뒤로 나자빠졌다. 저성장, 고령화가 더 확연해질 다음 정부에서는 증세 필요성이 더 절박하게 제기될 듯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체득된 조세저항이 똬리를 틀고 있는 한 세금을 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극단적인 증세 반대론자들은 ‘박근혜 소급·환급 모델’을 거론하며 세금을 돌려달라고 정부를 압박할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귀족과 성직자들에게도 세금을 매기는 세제개혁을 추진하다 기득권층의 반발로 실패한 뒤 대혁명을 맞았다. 조선시대 영조는 양반들에게도 호포(戶布)와 호전(戶錢)을 징수하는 증세를 추진하려다 이들의 저항으로 뜻을 이루지 못해 왕권 강화를 위한 재정 확보의 기회를 놓쳤다. 조선이 이후 쇠락의 길을 걸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박근혜 정부도 세금을 더 걷든, 복지를 줄이든 선택을 해야 하지만 세금 환급으로 정면승부를 피했다. 차기 정권과 국가에 참 큰 빚을 남겼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