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밖에 나가면 100년 넘은 가게들이 수두룩해. (중략) 전쟁으로, 지진으로 하루 아침에 주위 사람이 다 죽어 나갔는데 천운으로 살아남았다면 그 다음은 선택의 여지가 있나? 악착같이 살아야 했지. -‘도쿄의 오래된 상점을 여행하다’(여지영 이진숙 지음·한빛라이프·2014년) 》
‘316년’이란 시간은 실제로 얼마나 긴 것일까. 100년도 살까 말까 한 우리네로서는 그만한 시간의 길이와 깊이를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일본 도쿄 니혼바시(日本橋)의 가다랑어포 전문점 ‘닌벤’은 올해로 설립 316년을 맞았다. 이런 곳의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316년을 버텨 온 비결을 궁금해한다. 닌벤 관계자의 대답은 허무할 정도로 당연한 것이다.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닌벤 옆에는 이쑤시개 전문점인 ‘시루야’가 있다. 1704년 설립된 이 회사의 역사도 300년이 넘었다. 이쑤시개는 사실 단순한 소모품에 가깝다. 그럼에도 시루야는 이쑤시개의 두께와 길이를 달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담는 상자에 12지 동물을 그려 넣는 등의 방법으로 ‘예술품’에 가까운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유가 뭘까. 8대 사장인 야마모토 가즈오 씨의 대답은 이렇다.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니 기왕이면 품질이 좋고 아름답게 만들어야죠.”
우리는 좀 낡았다 싶은 것을 새 걸로 바꾸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늘 공사 중이다. 최신 유행 아이템을 앞세운 상점이 들어섰는가 하면 1∼2년도 안 돼 그 자리에 다른 가게가 들어선다.
‘도쿄의 오래된 상점…’은 그런 우리에게 ‘느리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책의 주인공은 유명 대기업이 아니다. 가업을 이어 온 평범한 사람들이다. 90년 된 시부야의 음악다방 ‘라이온’이나 63년 된 메구로의 커피 전문점 ‘이토야’는 ‘스타벅스’ 같은 다국적 커피전문점 사이에서 지금도 꿋꿋이 버티고 있다. 이런 가게의 주인들은 남들이 모르는, 특별한 장수의 비결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버텼다” “꾸준하게 했다”라고 말한다. 이런 것이야말로 어떤 유행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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