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직원 고위험 상품 ‘꼼수’ 판매땐 성과급 깎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4일 03시 00분


금감원, 투자권유절차 실태 점검

직장인 A 씨는 지난해 말 임차인에게 받은 전세금 2억 원을 투자하려고 은행에 찾아갔다. 임차 계약이 끝나면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돌려줘야 해 원금은 꼭 지켜야 했다. 하지만 은행에서 투자 성향 평가를 받아 보니 A 씨는 고위험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적극투자형’ 투자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은행 직원은 A 씨의 투자 성향에 맞춰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주가연계증권(ELS)을 권유했다. 투자 수익에 솔깃해진 A 씨는 원금 손실 부담을 안고 이 직원이 권유하는 ELS에 가입했다. 최근 들어 ELS로 원금 손실을 입는 경우가 있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A 씨는 원금 손실을 볼까 불안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고객들의 투자 성향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고위험 투자상품을 추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금융회사의 투자 권유 절차 실태에 대해 첫 점검을 실시하고 3일 결과를 발표했다. 점검 대상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일반투자자에게 투자상품을 판매하는 64개 금융회사다.

금융회사가 투자자에게 금융투자상품을 권유할 때는 반드시 투자 성향을 평가해 적합한 상품만을 권해야 하지만 실제 투자 성향에 비해 위험한 상품을 판매하는 등 투자 권유 절차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1%대 초저금리 시대에 상대적으로 투자 수익이 높은 상품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불완전 판매도 많아졌다.

이번 금감원 점검 결과 64개 금융회사 중 2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설문에 대한 투자자의 답변을 점수화해 총점으로 투자 성향을 결정하는 점수화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점수화 방식은 총점만 보기 때문에 원금 보장 등 투자자의 성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금융회사들에 점수화 방식의 보완을 요구했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고객에게 위험한 투자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일부 금융회사의 꼼수도 드러났다. 직장인 B 씨는 부모의 노후자금을 월지급식으로 받기 위해 투자상품에 가입하려고 증권회사를 찾았다가 부적합확인서를 쓰고 파생상품에 가입했다.

금융회사들은 투자자가 실제 투자 성향에 부적합한 고위험 상품에 투자할 때 ‘부적합확인서’를 제출받아야 한다. 3억여 원을 투자했다가 1억 원을 날리게 된 B 씨는 “확인서가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사인을 했다”며 “부모님의 노후자금이라 안정적으로 투자하고 싶다고 분명히 밝혔는데도 원금 손실을 입게 돼 막막하다”고 말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금융회사들이 정기예금과 같이 수수료가 낮은 상품보다는 수수료가 높은 고위험상품을 유도하다 보니 실제 투자자의 투자 성향에 비해 위험한 상품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며 “원금 손실에 대한 위험에 대해 고객이 자필로 쓰도록 하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회사들은 투자자가 금융회사로부터 투자 권유를 받지 않고 스스로 투자상품을 투자할 때 쓰는 ‘투자권유불원 확인서’를 불완전판매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으로 악용하기도 했다. 실제로는 투자 권유를 해놓고도 위험한 상품에 가입하려는 고객들에게 해당 확인서를 받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금감원은 이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 부적합확인서나 투자권유불원확인서를 받고 투자상품을 판매한 경우 성과급 산정 점수를 낮게 부여하도록 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하반기 중 금융회사들이 투자 권유 절차 유의사항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실태점검에 나설 예정이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금융투자상품#고위험 투자상품#투자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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