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 强國으로]IT접목, 감성소재, 첨단소재, 글로벌 톱4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1일 03시 00분


소재부품산업 1000억 달러 흑자시대

2014년 12월 11일은 한국의 소재부품 산업계에서 ‘기념일’로 기록할 만한 날이다. 소재부품 산업의 무역수지 흑자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돌파한 역사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1997년 34억 달러 흑자로 돌아선 뒤 17년 만에 30배로 성장하며 이룬 쾌거다.

전문가들은 소재부품 무역흑자 1000억 달러 돌파가 단순히 관련 산업의 규모가 커진 것을 넘어 한국 산업의 경쟁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조립산업 중심의 성장에서 벗어나 제품의 원천소재를 직접 생산하는 것으로 산업 체질이 탈바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소재부품 무역흑자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무역흑자 선도하는 소재부품 산업

지난해 한국 소재부품 산업의 흑자 규모는 1079억 달러로 전체 무역수지 흑자액(474억 달러)의 2.3배를 기록했다. 부품산업이 855억 달러로 79%, 소재산업이 224억 달러로 21%를 차지하며 부품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드러냈다. 품목별로 보면 전자부품의 무역흑자가 448억 달러로 가장 많았고, 수송기계(231억 달러), 화학소재(169억 달러), 전기기계부품(95억 달러) 등의 흑자 폭도 컸다.

지역별로는 중국에서만 469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우리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중남미 등 신흥시장에서도 소재부품 무역흑자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아세안에서만 2010∼2014년 연평균 17.6%씩 소재부품 분야의 무역흑자가 증가하고 있고 중남미에서도 무역흑자 연평균 증가율이 9.0%에 달했다.

과거 한국 무역의 ‘아킬레스건’이었던 대(對)일본 소재부품 의존도는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일본에서 소재와 부품을 들여와 한국에서 조립가공해 해외로 수출하는 전통적인 산업 생태계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전체 소재부품 수입액 중 일본에서 수입한 금액이 차지하는 비중인 ‘대일 소재부품 의존도’는 지난해 사상 최저 수준인 18.1%까지 떨어졌다.

박청원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은 “소재부품 분야에서 한국이 자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한국 산업의 부가가치 창출능력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인건비 상승 등으로 조립가공 분야에서 신흥국에 비해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소재부품 분야의 무역흑자 증가는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동력을 창출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기업 기술개발이 원동력

국내 소재부품 산업이 한국 전체 제조업 생산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면서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효자산업으로 도약하게 된 원동력은 소재부품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으로 승부한 기업들의 노력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의 소재부품 산업 육성정책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 시책으로 중화학공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지만 기술력이 없는 상황에서 ‘하면 된다’는 일념 하나로 나아가다 보니 산업의 핵심인 소재 및 부품은 전적으로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중반 소재부품 산업 육성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수입금지형 국산화 정책’을 추진한 정부는 1980년대 들어 수입처 다변화 제도와 자본재 산업 육성정책으로 자립화에 시동을 걸었다. 국내에서 당장 조달이 가능한 소재부품은 해외에서 수입을 금지하면서까지 육성에 나섰고 이후 공급처를 분산하면서 해외 의존에 따른 위험을 분산시켰다.

1997년 소재부품 분야에서 처음으로 무역흑자를 기록한 뒤로는 본격적인 신소재 및 부품 개발에 힘을 쏟았다. 2000년대 들어 산업구조 고도화와 대일 무역적자 개선을 위해 부품소재특별법을 제정하고 ’제1차 부품소재발전기본계획‘과 ‘소재부품산업 미래비전2020’ 등을 수립하면서 적극적인 소재부품 산업 육성 정책을 추진했다.

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재부품 산업은 자체 경쟁력으로 무역흑자를 확대해갔다”며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대기업들이 글로벌 메이커로 입지를 다지면서 국내 소재부품 기업들이 클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고 평가했다.

2020년 소재부품 4대 강국으로 우뚝

정부는 미래시장 선점형 첨단소재 개발, 융·복합을 통한 부품 명품화, 성장견인형 소재부품 생태계 구축, 글로벌 공급 네트워크 주도 등을 골자로 하는 ‘2020 소재부품 세계 4대 강국’ 로드맵을 최근 만들었다. 소재부품 산업을 더욱 키워 2020년에 총수출 6500억 달러, 무역흑자 2500억 달러를 달성하는 데 밑거름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탄소섬유나 고급 베어링 제품 등 첨단 소재부품 분야에서는 여전히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나마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첨단 소재부품 시장에서는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 밀리고 중국에 추격당하는 형국이다.

연구개발(R&D) 투자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선진국과 비교하면 미흡한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국내 제조업체들의 평균 R&D 투자 비중은 12%로 스웨덴(22%), 일본(15%), 미국(14%) 등에 비해 여전히 낮다.

박종래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기존의 소재부품에 인간의 따뜻한 감성을 융합한 감성소재부품 개발에 투자를 확대하는 등 정보기술(IT) 융합을 기반으로 소재부품 산업을 더욱 키워야 한다”며 “세계 최고 수준인 IT 기술을 소재부품 산업에 접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소재부품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정부의 육성 지원과 함께 기업의 과감한 R&D 투자 및 해외시장 개척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다. 중동과 중남미, 아세안 등 신흥국 시장의 수요 회복에 대비해 이들 시장을 겨냥하는 맞춤형 마케팅 전략 수립 등 보다 다각적인 노력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 하락과 중국의 거센 추격 등 어려운 대외 경제여건 속에서도 소재부품 산업은 무역흑자가 확대되면서 한국 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를 반영해 맞춤형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소재부품 산업을 중심으로 시장 선도형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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