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업 구조조정’ - 현대車 ‘지분 블록딜’로 규제 탈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1일 03시 00분


[‘일감 몰아주기 규제’ 14일부터 전면시행]기존 내부거래도 제재… 대기업 대응은

14일부터 총수 일가 지분이 특정 비율(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국내 주요 그룹 계열사에 대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적용되면서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2월 14일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신규 내부 거래에는 이미 제동이 걸렸다. 14일부터는 기존 내부 거래도 규제 대상이 된다.

그동안 국내 대기업들은 총수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기업 간 거래(B2B)’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실적을 끌어올린 뒤 상장시켜 승계 자금을 마련해 왔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그러나 ‘비정상적 거래’ 등 모호한 기준이 많아 해당 기업들은 규제 당국의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 재계 1, 2위 그룹은 이미 ‘탈출’

10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던 10대 그룹 51개 계열사 중 지분 정리 등을 통해 대상에서 벗어난 곳은 3개 그룹 8개사다.

삼성그룹에서는 지난해 4월 기준으로 삼성에버랜드, 삼성석유화학, 가치네트 등 3개사만 규제 대상에 올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세 자녀가 지분 42.19%를 가진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는 2013년 하반기(7∼12월) 건물관리사업을 그룹 내 다른 계열사인 에스원으로 양도했다. 급식 및 식자재 사업은 삼성웰스토리로 분사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지분 33.17%를 보유한 삼성석유화학은 지난해 8월 삼성종합화학에 흡수 합병시킨 뒤 ‘빅딜’을 통해 한화에 넘기기로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주주인 정보서비스업체 가치네트는 지난해 말 청산됐다. 3개사 모두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까지 12개 계열사가 규제 리스트에 올랐지만 현재는 8개사로 줄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6일 현대글로비스 주식 13.39%를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해 지분을 29.99%로 낮췄다. 현대차그룹은 건설 계열사인 현대엠코(정 회장 부자 지분 35.06%)를 지난해 4월 현대엔지니어링과, 자동차 부품회사인 현대위스코(정 부회장 지분 57.87%)는 지난해 11월 현대위아와 각각 합병시켰다.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의 기업공개(IPO)가 연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IPO 과정에서 정 회장의 장녀 정성이 이노션 고문(40%)과 정 부회장(10%) 지분 일부를 시장에 내놓거나 신주 발행을 통해 총수 일가 지분을 30% 미만으로 줄일 것”으로 내다봤다.

○ 비상 걸린 시스템통합(SI)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중에는 SI 업체들이 특히 눈에 띈다. 이들 기업의 매출액 상당 부분은 그룹 계열사들에 전사적자원관리(ERP), 공급망관리(SCM), 고객관리(CRM) 관련 소프트웨어를 구축해 주는 데서 나온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32.92%)과 여동생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10.50%), 최 회장의 사촌형인 최신원 SKC 회장(0.01%)이 지분 43.43%를 가진 SK C&C가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다. SK C&C는 2013년 내부 거래 규모가 8941억 원으로 전체 매출액 대비 49.5%였다. SK그룹 관계자는 “SK C&C는 내부 거래 비중이 높긴 하지만 보안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수의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GS그룹 역시 18개 규제 대상 계열사 중 GSITM이 가장 골칫거리다. GS가(家) 4세들을 포함한 총수 일가 지분이 93.34%에 이르는 이 회사는 2013년 매출액 2116억 원 중 내부거래 금액이 1301억 원(61.5%)이다.

한화그룹에서도 규제 대상 6곳 가운데 한화S&C의 내부 거래 규모가 가장 크다. 이 회사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갖고 있다. 특히 한화S&C의 내부 거래 비중은 2012년 46.3%에서 2013년에는 54.7%로 오히려 높아졌다.

○ 비정상적 거래 기준 모호

개정 법에 따라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로 판단된 기업 오너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수혜 기업은 과징금을 최근 3개 연도 평균 매출액의 최대 5%까지 내야 한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내부 거래의 ‘부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총수에게 부당 이익을 준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정상적인 조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7% 이상 차)으로 거래하거나 △총수 지배 회사가 직접 수행할 경우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행위다. 또 사업 능력, 재무 상태, 신용도, 기술력, 가격 등에 대한 ‘합리적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 없이 연간 200억 원 또는 국내 매출액의 12% 이상 규모로 거래하는 행위도 포함됐다.

여기에서 ‘정상적인 조건’, ‘상당한 이익’, ‘합리적 고려’ 등의 정의가 법에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이다. ‘7% 이상 차가 나는 조건’에 대한 의미도 불명확하다.

재계 관계자는 “정상적인 거래라 해도 회사마다 사업마다 계약 조건이나 단가가 달라 부당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만에 하나 정부에 밉보일 경우 부당 내부 거래로 꼬투리를 잡힐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 기업이 선제적으로 지분 정리부터 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국내 기업의 대외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창봉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감 몰아주기 관련 법안은 국내 기업들의 경영 환경을 어렵게 만드는 대표적인 규제”라며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대기업들이 총수 일가 지분이 높다는 이유로 사업상 제약을 받는다면 국가로서도 큰 손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정위 관계자는 “법이 다소 추상적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판례가 축적되면 구체화될 것”이라며 “조만간 심사 지침을 만들어 구체화하겠다”고 해명했다.

강유현 yhkang@donga.com·김창덕·김지현 기자
#일감 몰아주기 규제#삼성#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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