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태국 입법의회는 찬성 190표, 반대 18표로 잉락 친나왓 전 총리에 대한 파면을 가결했다. 잉락 전 총리는 5년간 참정권이 중지되고 정치활동도 금지됐다. 쌀 담보제도 비리가 만연해 거액의 손실이 났는데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게 탄핵의 이유였다.
지지 세력은 의회의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해 쿠데타 직후 사회적 화합을 선언하며 집권한 군사정권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여기다 군정 각료들은 올해로 예정된 민간정부 이양 선거가 내년 이후로 연기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새 헌법 제정이나 민정 이양이 국민투표 없이 진행될 수 있다고 시사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를 두고 기본적 민주 절차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으며 태국 국민의 77%도 헌법 제정을 위해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국내외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군사정부는 국민투표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이다. 군정은 민정 이양 지연 등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현 정권의 성과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군정의 부정부패 척결로 최근 국제반부패협회가 발표한 태국의 부패인식지수(CPI)가 지난해 102위에서 85위로 뛰었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이 순위는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29위인 태국 경제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특히 군사정권 이후 가장 기대했던 경제성장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국민의 실망감은 커지고 있다. 태국은 지난해 4분기 ‘V자’ 경기회복을 통해 경제성장률 2%를 목표로 했지만 실제론 1.2% 달성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부양을 위해 작년 4분기(10∼12월)에 계획했던 3645억 밧(약 12조4000억 원) 규모의 정부지출 집행도 올 1분기(1∼3월)로 연기됐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면서 작년 4분기부터 잠재성장률 4% 이상의 경기회복을 자신했던 정부는 올 1분기에 경기회복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정부 지출이 지연되고 선진국 경기회복이 불투명해지면서 장담하지 못할 판이다. 특히 최근 유럽연합(EU)은 태국의 정치 상황을 감안해 일반특혜관세 대상국에서 태국을 제외해 유럽 수출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군정은 잉락 전 총리에 대한 탄핵이 부정부패 척결의 일환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다음 총선을 위해 친(親)탁신 세력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또 군정은 새 헌법에 현 정부의 핵심 권력기관인 국가평화질서평의회(NCPO)에 국가안보 유지 등의 권한을 부여하는 특별조항도 검토하고 있다. 다음 선거에서 탁신 세력이 승리한다고 해도 NCPO가 이를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을 갖겠다는 뜻이다. 결국 총선 이후에도 군사정권이 권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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