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상시 근로자 300명 이상) 3곳 중 1곳은 단체협약을 통한 ‘취업 세습’이 이뤄지는 것으로 11일 나타났다. 청년 실업률(지난달 기준 9.2%)이 두 자릿수에 육박하고, 비정규직이 600만 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사실상 ‘현대판 음서제’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6월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해 조사한 ‘단체협약 실태 분석’에 따르면 대기업 600여 곳(공기업 제외) 가운데 180여 곳(29%)의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에 직원 가족의 채용을 보장하는 조항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결과 한 타이어 회사는 정년퇴직자의 직계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조항이 있었고, 한 자동차 회사 역시 정년퇴직 후 1년 이내에 직계존비속을 우선 채용하기로 노사가 합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 일반 질병이나 부상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경우에도 해당 직원의 가족을 특별 채용하는 조항이 포함된 회사도 있었다.
이런 조항은 대부분 노조가 임금 및 단체협상 과정에서 사측에 강하게 요구해 체결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노조가 없는 대기업 상당수도 비슷한 조항을 단체협약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상 재해를 당해 가족의 생활이 어려워졌을 때 자녀 등을 채용할 수도 있지만 정년퇴직이나 일반 질병으로 인한 퇴직자의 가족까지 단체협약을 통해 무조건 채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취업 세습을 막을 수 있는 법 조항이 없는 데다 노사가 단체협약을 통해 합의할 경우 정부가 제재하거나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 고용부 관계자는 “교섭 지도 과정에서 개선 권고는 할 수 있지만 정부가 시정을 명령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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