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땅콩 회항’ 사건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재판장에게 한 말이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지만 객실 서비스를 ‘세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발언이 ‘징역 1년’이라는 실형 선고로 이어지는 데 일정 부분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회적 공분을 산 조 전 부사장이 ‘납작 엎드리지 않으면서’ 상황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사건 재판부는 “매뉴얼 위반을 사건의 발단이라고 계속 주장하는 등 피고인이 진정한 반성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조 전 부사장이 재판 과정에서만 ‘일’을 내세우며 승무원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은 아니다. 사건 발생 초기부터 줄기차게 승무원 책임론을 거론해왔다. 이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8일에는 “책임 임원으로서 승무원의 서비스 문제를 지적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해 12월 12일 국토교통부 조사를 받은 후에도 “사무장이 잘못했으니 오히려 나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자숙과 반성을 요구하는 여론과는 동떨어진 행보를 보인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상식에서 벗어난 대응을 한 것을 놓고 미스터리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변호인의 치밀한 법리 검토 끝에 나온 계산된 발언으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허점이 많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재계에서는 자존심이 강한 조 전 부사장의 개인적 성격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거론하는 사람이 많다. 평소 ‘유능한 3세 경영인’이라고 자부해 온 조 전 부사장으로서는 업무와 관련된 내용까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실제로 조 전 부사장의 업무 능력에 대한 대내외적 평가는 본인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긍정적이다. 이번 사건으로 조 전 부사장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대한항공 내부에서조차 “일은 잘한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성질은 까칠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이 있어 성공시킨 프로젝트가 많았다는 점에서다. 대한항공 기내 서비스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나 기내 면세점 매출을 획기적으로 늘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외부 평가도 마찬가지다. 특히 명품업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의 업무 능력을 높이 평가해 ‘거물’이라고 부르는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매출 기준으로 세계 정상권인 대한항공 기내 면세점에 제품을 공급하려는 명품업체들을 적절히 컨트롤하면서 대한항공의 영향력을 키운 것이 조 전 부사장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조 전 부사장이 대한항공 기내면세점 전용 상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면 콧대 높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명품업체들이 군말 없이 수용했다”며 “명품업체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한국인이 조 전 부사장”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향후 대한항공을 포함한 한진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조바심 때문에 합리적인 판단을 못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1심 선고 하루 만에 항소한 조 전 부사장이 2심에서도 ‘승무원 책임론’을 고수할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상식에 반하는 행동이 재판에는 이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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