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미국 현지 세무법인 등에서 7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서모 씨(47·여·서울 종로구)는 2010년 귀국한 뒤 4년을 쉬었다.
경영학석사(MBA) 학위까지 가진 그는 미국에서 받은 연봉(약 1억 원)보다 훨씬 적은 2000만 원대 안팎도 괜찮다고 생각했으나
일자리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 대부분의 세무사 사무실에서 “당신 같은 고학력자가 오면 제대로 융화될 수 없다”며 채용을 꺼렸기
때문이다.
#2.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가진 이모 씨(53·경기 고양시)는 유치원 교사로 일하다 2년 전 그만뒀다. 다시
보육교사로 일하고 싶어 하지만 면접 기회조차 가질 수가 없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20, 30대 젊은 여성만을 선호하고
있어서다. 》
본보가 22일 입수한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의 ‘빅데이터 분석 기반의 경력단절여성 맞춤형 재취업 지원 컨설팅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1월∼2014년 6월 구직을 시도한 경력단절여성 34만8699명 중 취업자는 절반 수준인 17만945명(49.0%)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전국 기업들이 경력단절여성을 채용하기 위해 등록한 일자리는 37만8777개로 구직자 수보다 3만78명(8.6%)이 많았다. 2명 중 1명이 취업에 실패한 것이 일자리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NIA는 구직자들과 구인기업이 각각 내세운 취업조건(전문분야 학력 근무시간 급여수준 고용형태 등)의 차이로 빚어진 ‘일자리 미스매치(수급불일치)’를 경력단절여성 재취업의 가장 큰 장벽으로 진단했다. NIA는 이 같은 결과를 지난달 여성가족부에 공식 보고했다.
○ 구직자와 구인기업의 동상이몽
통계청이 지난해 집계한 국내 경력단절여성은 전국적으로 197만7000명에 이른다. NIA는 이 중 여성부가 전국 140곳에 설치한 새일센터의 구인구직 데이터를 기반으로 경력단절여성의 취업 및 미취업 원인을 분석했다.
2013년 1월∼2014년 6월 새일센터를 통해 구직에 나선 전국 경력단절여성의 희망직종은 사무 종사자(8만4778명),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8만1249명), 단순노무 종사자(6만8980명) 순이었다. 구인기업들도 사무 종사자(8만3134명)를 가장 많이 찾았지만 다음으로는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6만4426명)보다 단순노무 종사자(8만1452명)를 많이 찾았다.
그 결과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는 총 일자리 수보다 구직자 수가 1만6823명이나 초과한 반면 단순노무직은 일자리가 1만2472개나 남았다. 장치기계 조작 및 조립 종사자, 즉 생산직의 경우도 구직자가 일자리 숫자보다 2만 명 이상 모자랐다. NIA는 전체 미취업자 17만7754명 중 2만1101명(11.9%)은 이런 ‘희망직종 간 미스매치’로 직업을 찾지 못한 것으로 분석했다.
김정호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적극 확대하고 있는 대기업 시간제 일자리는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줘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한계도 있다”며 “결국 고용 파급효과를 높이려면 중소기업들이 재취업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인센티브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나이, 학력 미스매치도 심각
나이는 경력단절여성들이 취업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본인은 충분히 일할 의욕을 갖고 있지만 단지 나이 때문에 번번이 면접에 탈락하면서 결국 취업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청년층 취업포기자가 지난달 5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해 강릉새일센터를 찾은 김모 씨(62·여)는 취업을 위해 요양보호사 심리상담사 레크리에이션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땄다. 한 요양원에서 면접을 보고 합격했지만 출근 전날 채용을 보류한다는 통보가 왔다. 해당 요양원에서 김 씨 대신 30대 초반 여성을 채용한 게 이유였다. 대형마트 판매직으로 일하던 안모 씨(45·여)는 2012년 10월 퇴직한 뒤 1년 반 동안 가족 간병에 집중했다. 다시 구직에 나서기 전 텔레마케팅 교육을 받고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번번이 면접을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해 상반기(1∼6월)취업한 경력단절여성들의 직종 매칭률(희망직종과 실제 취업직종이 동일한 비율)을 보면 34세 이하는 63.5%, 35∼39세는 60.5%인 반면 40∼44세, 45∼49세는 모두 58%대에 머물렀다.
학력 미스매치가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구직자들의 학력 분포를 살펴보면 4년제 대졸 이상이 23.0%에 이른다. 같은 기간 기업들이 선호하는 학력은 4년제 대졸 이상이 5.5%에 불과했다. 고졸 이하 학력은 반대로 구직자가 훨씬 모자란다.
학력 초과 현상이 가장 심한 곳은 대전이었다. 이 지역에서 지난해 상반기 구직에 나선 경력단절여성의 34.8%가 4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고학력자를 필요로 하는 일자리는 전체의 8.2%뿐이다. 대전은 2013년 1월∼2014년 6월 경력단절여성 취업률이 36.0%로 17개 시도 중 16위(17위는 세종 20.1%)였다.
유평준 숙명여대 원격대학원 교수(교육공학)는 “같은 경력단절여성이라도 전문직 종사자냐, 단순 숙련직 종사자냐에 따라 원하는 일자리가 다른데 현재는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경력단절여성 정책이 성공하려면 무조건 전체 파이만 늘리기보다는 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일자리 창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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