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대구 집 마당의 대추나무, 구기자나무가 싫었다. 나무 근처에 엉겨 붙는 벌레들 탓이었다. 그 열매로 차를 끓여 주는 어머니에게 “맛이 없다”며 투정 부리기 일쑤였다. 얼마 전 어머니가 옛집을 팔고 아파트를 샀다.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 된다는 말이 이런 때 쓰는 건지 애틋한 마음으로 최근 나무들에 이별을 고하고 왔다.
집을 보러 다니던 어머니에게 기왕이면 새 아파트를 사시라 권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옛집에서 멀지 않고 재개발을 앞둔 것도 아닌 익숙한 동네의 낡은 아파트를 한 채 샀다. “야야, 있는 돈으로 그저 내 한 몸 누일 정도면 안 되겠나. 새 아파트는 비싸서 엄두도 안 나더라.”
요즘 대구의 부동산 시장은 펄펄 끓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전국의 부동산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지난해 대구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억 원대 초반으로 3년 전보다 30∼40% 올랐다. 그만큼 부동산 투자자가 많다. 제주도에 들어설 호텔을 분양하는 회사들이 투자자를 모으기 위한 본보기집을 서울과 대구에 동시에 지을 정도다. 어머니가 새 아파트에 엄두를 내기 어려울 만도 하다.
대구는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분양 시장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부동산 경기가 형편없던 곳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는 시점이 오면 지금의 열기는 그때처럼 식을 터이다. 김신조 내외주건 사장은 “이미 대구지역 부동산 시장에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고 했다.
최근 5년간 대구의 신규 주택 증가분은 연 9000∼1만1000채다. 최근 건설사들이 일제히 대구지역 분양에 나선 결과 2017년까지 입주가 예정돼 있는 물량은 총 5만 채다. 올해부터 3년 동안 연간 1만7000채의 수요가 있어야 공급과 맞아떨어진다. 이 때문에 ‘사정을 아는’ 건설사들은 대구지역 분양시장에서 이미 발을 빼고 있다.
경고음이 울리는 다른 지역으로 세종시가 있다. 중앙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이전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지만 입주를 기다리는 아파트 물량이 2017년까지 3만3000채나 된다. 주판알을 튕기느라 분양 시기를 잡지 못한 건설사들은 제외한 물량이다. 공무원 가족들이 일제히 세종시로 이주한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일주일의 절반만 세종시에서 생활하는 공무원들이 태반인 상황에서 신규 아파트 입주가 본격 시작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공급 과잉→불황→공급 축소→과열→공급 과잉’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는 땅을 개발해 아파트를 짓고 입주가 시작될 때까지 기간이 너무 길어서다. 저층 아파트가 대부분인 미국은 땅을 사서 새 아파트를 지어 입주하는 데 수개월이면 되지만 한국은 4, 5년이 걸린다. 시행사가 땅을 살 때 입주 시점의 물량을 예측하기 힘든 만큼 사업 성공 여부는 상당 부분 운에 따라 달라진다.
사업 구조가 이런 만큼 돈 되는 곳에 몰려드는 건설사들에 무조건 자제할 것을 주문하긴 힘들다. 하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개인 투자자들마저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바짝 달아오른 부동산 시장에 뛰어드는 걸 방치해선 안 된다. 전국 부동산 수요공급 현황을 투자자들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지표를 정부가 제공하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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