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경영의 지혜]비상장기업이 상장기업보다 투자를 많이 하는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6일 03시 00분


기업이 거래소에 상장하고 나면 좀 더 쉽게 자본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상장기업은 비상장기업에 비해 기업 가치를 높이기가 쉽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비상장기업은 상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상장기업은 상장이 취소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이다. 그 결과 상장기업 수는 적어도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예상과 달리 1997년 이래 미국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 수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존 애스커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동료 교수들과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상장기업의 투자의사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주주들은 경영권을 위임받은 최고경영자(CEO)가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CEO의 의사결정은 현재 주가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예컨대 스톡옵션을 통해 취득한 주식을 팔려는 CEO는 현재 주가를 높이려는 유인을 갖는다. 따라서 CEO는 필요한 투자 행위를 의도적으로 생략해서 투자 비용을 아끼고 수익을 부풀려 주가를 한시적으로 띄울 수 있다.

반면 비상장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지 않거나 소수의 주주들로 구성된 집중적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비상장기업의 CEO는 상장기업 CEO에 비해 주가를 단기간에 인위적으로 높이려는 성향이 낮다고 추측할 수 있다.

애스커 교수 연구팀은 2001∼2011년에 걸쳐 상장기업 2595곳과 비상장기업 1476곳의 투자 행위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비상장기업이 상장기업보다 투자를 훨씬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상장기업 CEO가 현재 주가에 지나치게 집착해 비합리적인 투자 결정을 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신규 상장을 독려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규 상장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는 정책은 투자 활성화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엄찬영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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