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호경]취준생들 “脫스펙 믿어도 되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7일 03시 00분


김호경·산업부
김호경·산업부
최근 외국어 성적, 자격증, 수상 경력 등 이른바 ‘스펙’을 보지 않는 기업이 늘고 있다. 과도한 스펙 경쟁을 막고 스펙 대신 진짜 실력을 갖춘 인재를 뽑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가장 반길 줄 알았던 취업준비생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올해 8월 졸업을 앞둔 여모 씨(27)는 “기업들이 형식적으로 스펙은 보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평가할 것 아니냐”며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오히려 정보가 줄어 불안감만 커졌다”고 토로했다.

실제 탈(脫)스펙 전형을 도입한 기업 가운데 아직 스펙을 대신할 구체적인 평가 기준을 밝힌 곳은 거의 없다. 올해 상반기(1∼6월) 공채부터 스펙 입력란을 없애기로 한 SK그룹도 앞으로 자기소개서 평가를 강화하고 면접, 인턴십 등을 통한 직무수행능력 평가를 중시하겠다는 정도의 방침만 내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장 올해 취업을 해야 하는 취업준비생 상당수가 새 전형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다. 지방대를 나온 김모 씨(25)는 “취업이라는 시험을 치르는 입장에서 시험과목과 범위가 사라진 데다 평가 방식에 대한 정보가 없다 보니 공부할 범위는 오히려 늘어난 상황”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채용 평가기준이 불확실하다 보니 “입사지원서에 스펙을 안 써도 결국에는 학력이나 스펙이 당락을 좌우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실제 지난해 탈스펙 전형을 도입한 마사회는 입사지원서 스펙 입력란을 없앤 대신 영어 시험과 한국사를 포함한 상식 시험을 치르고 있다. 면접 전에는 학력 관련 서류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올해 마사회에 지원한 김모 씨(27)는 “토익 대신 자체 시험 보고, 학력이 반영되는 단계가 달라진 게 정말 탈스펙인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탈스펙 전형이 능력 중심의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 분위기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우선 기업들이 스펙을 대신할 객관적이고 공정한 채용 기준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탈스펙 기업도 더욱 늘어나야 한다. 그래야 취업준비생들이 불필요한 스펙까지 쌓느라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소신을 가지고 진짜 실력을 키우는 데 나설 수 있다.

김호경기자 whalefisher@donga.com
#스펙#인재#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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