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허니버터칩 열풍, 찻잔속 태풍 안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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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요즘 과자 시장은 온통 ‘꿀 천지’다. 지난해 9월 시판된 허니버터칩 이후 단맛을 강조한 감자칩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기 때문이다. 3월 현재 판매 중인 달콤한 맛 감자칩만 20여 가지나 된다. 피자나 화장품, 우유 등 다른 영역까지 합치면 ‘허니(꿀)’란 수식어를 단 상품은 무려 40∼50가지에 이른다.

허니버터칩 열풍은 제조사인 해태제과뿐 아니라 업계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대형마트에서는 감자칩을 비롯한 스낵류의 지난해 4분기(10∼12월) 매출이 전년 대비 23% 올랐다고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극심한 매출 정체에 시달려 왔던 제과업계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좀 답답한 느낌이 든다. 달콤한 감자칩 외에 국내 제과업계가 최근 몇 년 사이 내놓은 신제품은 가뭄에 돋아난 콩 싹 만큼이나 적다. 국내 제과업체들은 실제로 신제품 없이 장수 제품만 우려먹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사실은 ‘종합 과자선물세트’ 하나만 열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제품이 20∼30년 전 시판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과업체 대다수는 한동안 신제품을 만들지 않다가 허니버터칩이 인기를 얻은 분위기를 타고 너도나도 ‘미투(me-too·유사) 제품’을 내놓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제품을 만드는지는 개별 업체의 자유다. 하지만 여기서 기업에 신제품이 왜 중요한지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허니버터칩이 준 진정한 교훈이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기업은 끊임없는 혁신과 개선을 통해서야만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허니버터칩이란 신제품은 그동안 스낵류를 멀리했던 고객들 사이에서 과자란 상품의 존재를 환기했으며, ‘짭짤한 감자칩’이 아닌 ‘달콤한 감자칩’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혹자는 “미투 제품을 통해서라도 업계 전체가 수혜를 봤으니 좋지 않은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미투 제품은 태생적인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바로 ‘브랜드 진부화’다. 미투 제품의 범람은 새로운 것을 단기간 안에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너무 뜨겁게 달아오른 것은 소비자들의 싫증을 부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일부 업계 전문가들은 ‘꿀맛 과자 열풍’이 단기간의 유행에 그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최근 만난 한 식품업체 간부는 “요즘같이 경기가 어려울 때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그 제품이 대중의 관심을 끌게 하는 데 필요한 ‘총알’(자금 여력)을 마음껏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소매 시스템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현행 소매 시스템에서는 신제품을 대형마트 판매대에 올리고 싶은 회사는 자사의 기존 제품을 내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제품 개발에 인색한 기업들의 태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래된 것 중에도 좋은 것이 많지만, 우리 소비자들도 어릴 때 먹던 것을 벗어나 ‘맛의 신세계’를 만나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청나라 말 서구식 근대화 개혁인 양무운동(洋務運動)을 이끈 좌종당(左宗棠)은 ‘학문이란 물을 거슬러 배를 저어가는 것과 같아 나아가지 않으면 곧 물러나게 된다(學問如逆水行舟不進則退)’고 했다. 비즈니스도 이와 같지 않을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는 기업은 결국 세월의 물살에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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