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일째 ‘0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끝판대장’ 오승환(한신)의 평균자책 점수가 아니다. 최근 전혀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온실가스배출권 시장의 상황이다. 배출권을 사겠다는 업체는 있지만 팔겠다는 업체가 전무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거래부진과 더불어 배출권이 모자라는 기업들은 정부를 대상으로 잇달아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온실가스배출권 시장이 개장한 1월 12일 이후 누적거래량과 거래대금은 각각 1380t, 1155만800원이다. 개장 첫날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각각 1190t, 974만400원이었지만 그뿐, 개장 후 6거래일인 1월 19일 이후 매매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기업마다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정해주고 이를 초과한 기업은 온실가스배출권을 구입하도록 한 제도다. 배출권을 구입하지 않고 허용량을 초과해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과징금을 내야 한다. 이 때문에 부족분은 남는 업체로부터 사야 한다.
하지만 기업마다 할당된 배출권이 요구량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거래실적 ‘0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525개 기업에 올해부터 2017년까지 배출하도록 사전 할당한 온실가스배출권 총량은 15억9772만 t으로 기업들이 요구한 규모(20억2100만 t)의 79% 수준이다. 정부가 업체별 배출권을 할당하자 525개 기업 중 46.3%(243곳)는 이의신청을 했다. 환경부는 이 중 40개 기업의 이의를 받아들여 정부 보유 예비분(8900만 t)에서 670만 t을 추가로 할당하기로 했다.
그러자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업체들의 집단 소송이 이어졌다. 비철금속(17곳), 폐기물(12곳), 석유화학(16곳) 등 총 45개 기업이 환경부를 상대로 집단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석유화학업계는 “에너지 다소비업종에 속하는 다른 기업들은 올해부터 2017년까지 감축의무가 5% 내외이지만 석유화학업종은 15%나 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주변국보다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한국과 일본의 기후변화대응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협약상 한국은 온실가스 의무감축 부담이 없는 ‘개발도상국’이지만 감축 의무국이자 선진국인 일본보다 더 강력한 감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자칫 세계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제도 도입 초기의 시행착오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거래가 정상화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 런던 국제상품선물거래소(ICE)에서 처음 온실가스배출권이 거래된 2005년에도 거래실적이 거의 없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독일에서도 제도 도입 초기 806건의 이의신청과 406건의 소송이 제기됐다”며 “제기된 소송에 적극 대응하고 제도 개선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배출권 할당 대상업체 이외의 업체도 적절한 자격을 갖추면 배출권을 발급받도록 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이수재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 팀장은 “정부가 할당량 준수 여부를 기업으로부터 보고받는 시점인 내년 5월이 다가오면 거래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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