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채권비율 규제라는 게 있습니다. 금융회사로 하여금 총여신에서 부실채권이 차지하는 비율을 언제까지 얼마(1.5%) 이하로 맞추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걸 당국이 억지로 강제하니까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무리하게 매각하거나 괜히 여신을 늘려서 분모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런 건 당국이 시키지 않아도 금융사들이 알아서 잘하는 문제인데 말이죠.”
16일 취임한 임종룡 신임 금융위원장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규제를 위한 규제’, ‘현장과 유리(遊離)된 규제’를 대폭 정비하겠다며 부실채권 등 건전성 규제를 그 사례로 언급했다. 다 큰 대학생 자녀의 리포트를 부모가 검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듯이 이미 금융사들이 마땅히 잘 지키는, 또는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는 규제는 적극적으로 발굴해 꽉 막힌 금융산업의 숨통을 틔워 주겠다는 뜻이다.
○ “LTV 등 부동산 대출규제 그대로 둘 것”
최근 관심사로 떠오른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규제 이슈에 대해서도 임 위원장은 비슷한 생각을 밝혔다. 당국의 규제 이전에 금융사의 자율과 책임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정부가 기준금리 인하의 보완책으로 ‘대출규제 강화 카드’를 뽑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많았다. 급증하는 가계부채의 속도 조절이 정부로서 시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 위원장은 “LTV·DTI 규제는 작년 8월에 완화돼 좀 더 효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는 만큼 당분간 바꿀 생각은 없다”며 “그보다 금융사가 스스로 대출받는 사람의 상환 능력을 잘 판단하는 역량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금융 건전성 훼손을 막기 위해 당국이 금융회사의 대출한도를 일일이 규제하고 있지만, 대출이 떼일 가능성을 판단하고 책임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금융사의 역할이라는 뜻이다.
임 위원장은 금융회사의 수수료와 금리, 배당 등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금융사의 자율성을 보장할 것”이라며 “다만 금융상품 간 비교 공시가 가능해지고 (금융사들의 가격 결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진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또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대적인 제도 개편도 예고했다. 그는 “(옛 재정경제부의) 증권제도과장만 3년을 했을 정도로 내 경력 중 가장 오래한 분야가 자본시장”이라면서 “코스피, 코스닥, 코넥스 시장이 각각의 특성에 맞게 경쟁하면서 발전할 수 있도록 거래소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연기금 운영에는 국내 금융사의 참여를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연기금 자산은 1263조 원으로 전체 금융자산의 31%에 이른다.
○ “매주 현장을 누빌 것”
임 위원장은 금융업권의 ‘칸막이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현재의 ‘은행+증권 복합점포’에 보험사 입점을 추가로 허용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하나의 금융그룹이 한 개의 자산운용사만 거느릴 수 있도록 한 규정도 폐지하겠다고 했다. 임 위원장은 “(NH농협지주 회장 시절) 복합점포를 개설한 뒤 현장을 방문했을 때 고객들 반응이 좋았다”며 “금융회사는 기본적으로 고객들이 원하는 바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 간부들과 상견례 자리에서 가장 처음 한 주문이 ‘이제 현장으로 나가라’는 것이었다”며 앞으로 본인도 매주 1, 2차례 현장을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넷전문은행은 당초 계획대로 비대면 실명확인 허용, 금산분리 원칙의 보완 등을 거쳐 6월까지 도입 방안을 만들기로 했다. 임 위원장은 우리은행 매각에 대해서는 “신속히 추진하겠지만 시한을 설정하지는 않겠다”며 “매각 방안을 공론화할 수 있도록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임 위원장은 “금융감독원은 금융위의 유능한 파트너이자 동반자”라며 “두 기관이 결연히 한 몸이 돼 금융개혁을 완수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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