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철이 한창인데 전세 매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2011년에 주택 임대차시장 거래 중 33%였던 월세 비중이 올해 1월에는 44%까지 늘었다. 드문 전세를 찾아내도 전세금이 집값의 70%는 기본이고 일부 지역에서는 90%를 웃돌기도 한다. 전세금이 매매가를 뛰어넘는 곳도 있다.
지난주 사상 첫 1%대 기준금리 시대로 접어들면서 전세시장은 사실상 종언을 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세금을 은행에 넣으면 연 이자율이 1%대에 불과하지만 월세로 돌릴 때에는 6% 안팎이니 집주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결국 월세로 내몰린 세입자는 높아진 주거비용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운 좋게 전세를 구한다 해도 계약이 종료됐을 때 전세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이른바 ‘깡통전세’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가계대출을 받은 가구들의 주거 관련 지출비용 증가에 따른 채무상환능력이 악화되면서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취약해질 수도 있다.
저출산, 저성장시대로 접어들며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한국에서 전세 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간 적정 수준 이상의 집값 상승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집은 ‘임대수익형’보다는 ‘시세차익형’ 상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주택시장이 큰돈을 벌 수 없는 장세가 되면서 임대차 계약 형태는 보증부 월세(반전세)와 순수 월세로 성큼 옮겨갈 것이고 전세의 소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 때문에 전세 물량의 수급 안정에 집착하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책은 집을 사려는 이들의 거래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시장의 중개자 역할을 하면 된다. 또 월세 세입자를 위해 임대 물량을 충분히 공급해 전·월세 전환율(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의 수익률)을 낮추고 각 소득계층의 수요에 맞게 임대주택의 규모와 질을 다양화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둬야 할 주택정책은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지원일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중 10년 이상 장기임대주택의 비율이 여전히 낮은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장기임대주택을 지속적으로 늘려야 한다. 임차료를 보조하는 방식인 주택 바우처 제도도 본격 도입해야 한다. 또 민간 임대주택도 활성화해야 한다. 임대차시장의 큰 축인 다주택자들을 전·월세시장 안정화에 끌어들일 수 있도록 종합부동산세 폐지도 검토해봐야 한다. 다주택자 중과세가 폐지된 지금도 여전히 종부세 때문에 다주택자는 징벌적 성격의 세금을 내야 한다.
주택정책은 계층 맞춤형으로 진화해야 한다. 다만 여유 있는 계층을 위한 정책적 개입은 가급적 시장을 통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전세의 종말 시대로 가는 과도기에 정부와 소비자의 현명한 대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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