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유영]달콤한 독약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1일 03시 00분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도대체 경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최근 사석에서 만난 A기업 오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경영계획 회의에서 계열사 사장 한 명이 “자동화기기를 더 들여오자”는 말을 했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계열사 사장의 ‘아이디어 제안’은 13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경제5단체장을 만난 자리에서 ‘(내수를 살리기 위해)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압박한 데 따른 것이었다.

A기업은 경영 여건상 직원을 더 뽑기 힘들고 임금을 올리기는 더욱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이 때문에 계열사 사장은 ‘자동화기기를 도입해 사람을 줄이는 대신 임금을 올려 정부에 성의 표시를 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그는 정부 정책에 의문을 표시했다. 소비 회복의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임금 인상이 과연 진정한 해법이겠냐는 것이었다. 일부 기업이 당장 사람을 덜 뽑거나 사업장을 해외로 옮기는 편법을 쓸 수도 있고, 임금 인상의 혜택을 받을 큰 기업의 근로자(정규직)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7%에 그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A기업 오너는 “정책 당국자들이 바둑으로 치면 두세 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을 펴면서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다”고 혀를 찼다.

이는 ‘듣기 좋은 말’이 때로는 의도치 않은 곳에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2013년 골목 상권 보호를 위해 커피업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추진될 때도 그랬다.

이디야커피는 당시 가맹점이 급증하는데도 직원을 제대로 못 뽑아 ‘속앓이’를 해야 했다. 중소기업법에 따르면 상시 근로자 수 200명 이상 또는 연 매출 200억 원을 초과하는 기업은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이기 때문이었다. 직원 수가 200명에 육박하던 이디야커피는 중소기업으로 남기 위해 채용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2014년 6월 커피업종의 중기적합업종 신청이 철회된 뒤에야 공개 채용에 나설 수 있었다. 재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규제가 가져오는 불확실성이 기업 경영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요즘 유행처럼 일고 있는 일부 ‘반값’ 정책도 다르지 않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3년에 추진한 ‘저축 식당’ 정책은 서울 영등포시장역 주변에 식당을 열고 빈곤층의 밥값 절반을 적립한 뒤 당사자에게 돌려주겠다는 취지였지만 인근 상인들이 강력 반발했다. 결국 서울시는 반값 식당 정책을 포기하고 인근에 복지 공동체를 조성하는 것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임금을 올려주고 빈곤층에 반값 식사를 제공한다…. 언뜻 보면 달콤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람을 덜 뽑을 수도 있고, 주변 상인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 당장 4·29 재·보궐선거가 있고 내년에는 4·30 총선도 있다.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발언들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누군가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달콤함 속에 감춰진 이면을 더욱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할 때다.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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