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3월 말 기준으로 1100조 원을 넘을 예정이다. 최근에는 단지 석 달 만에 15조 원이나 늘어났다. 국민 한 사람당 21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빛의 속도로 증가하는 가계대출의 규모보다도 그 구조를 더 걱정한다. 한 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전체 가계부채 중 자영업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44% 정도로 임금 근로자보다는 작지만 오히려 자영업자 가구당 가계부채와 이자부담은 임금근로자의 두 배에 이른다고 한다.
세대별로는 베이비붐 세대의 부채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고 또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다른 자료에 따르면 40, 50대 가계대출과 그 이자 부담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은 국내 전체 가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추 세대로 현재의 부채규모를 줄이지 못하고 은퇴를 맞게 된다면 우리 사회가 직면할 충격이 엄청날 것이다. 가계 부채는 만성병이면서 우리 경제의 최대 위험 요인이 된 지 오래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 가계에선 지나친 빚을 갚아나가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빚을 늘리고 있다. 빚 갚기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개인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2009년에 이미 143% 수준으로 2000년의 81%보다 크게 높아졌고 미국(128%)과 일본(112%)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올해 말에는 16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가계 빚이 늘어나 어려움을 겪는 사연들이 자주 나온다. 필자 역시 수년 전 집을 마련하면서 진 은행 대출의 원금과 이자 상환 부담이 녹록지 않다. 대출금의 이자에 더해 3년의 거치기간이 끝남에 따라 매월 내야 하는 원금까지 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월급 받아 원리금 갚고 나면 자녀교육비 내기도 버거운 전형적인 하우스푸어의 고달픔이다. 근래 들어 금리가 낮아져 원리금 상환 부담이 줄어든 게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어 온 저금리 기조가 언젠가는 끝나고 느리지만 전반적인 경기회복과 물가상승으로 인해 금리가 인상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가 시중의 통화량을 확대해 온 이른바 ‘양적완화 조치’의 종료를 선언했다. 물론 유로존의 유동성 확대와 거시경제 여건의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시기의 문제이지 미국의 금리인상 조치는 불가피한 방향이다. 대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통화정책과 금리결정 방향도 자유로울 수 없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부채 부담이 배가된다. 변동금리 대출이 여전히 주류이고 일정기간 이자만 내는 대출이 일반적이어서 금리 상승기가 되면 이자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자가 늘면 특히 상환능력이 취약한 저소득 서민들의 부담이 더 커진다. 세금이나 보험료, 이자비용과 같은 ‘비 소비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서민들은 씀씀이를 줄일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시위 떠난 화살이 될 수도 있는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부동산활성화 방안으로 완화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와 금리인하로 인해 부채규모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계부채 구조의 질적 개선이 급선무다. 특히 부동산 담보대출은 금리 변동 위험이 적은 고정금리 대출을 장려하고 이자만 내는 거치기간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적 가계대출 쇼크를 줄이는 방법이다. 최근 정부에서 수십조 원 규모의 안심전환대출 정책을 편 것은 바람직한 대책이다. 급히 추진하다 보니 불거지고 있는 몇몇 부작용은 아쉽지만 개선해 나가면 된다. 신임 금융당국 수장의 첫 행보가 가계부채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니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경기회복이 예상되는 시점에는 금리를 일정부분 인상해 가계부채에 대해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지만 그 시기와 속도를 가능한 한 늦추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당사자인 금융회사의 역할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용카드보다는 직불카드나 체크카드 사용을 독려하고 일선 창구에서 가계대출의 유용성과 위험성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금융 소비자도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 돈을 빌릴 때 이자율이나 상환방법 결정 등의 거래행위는 소비자 스스로의 책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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