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문대 출신도 나이 많으면 탈락” ● ‘남 30세, 여 28세’가 채용 가이드라인 ● “연말까지 하루하루가 공포”…부모 세대도 휘청 ● “취업 이력서에 나이 항목 없애야”
삼수 끝에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김모(30) 씨는 스물일곱 되던 해 졸업했다. 다른 학생들처럼 그도 열심히 직장을 구했다. 삼수 탓에 조금 늦어졌지만 학벌도 나쁜 편이 아니고 토익 점수도 높아 금방 취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씨는 졸업하고 3년이 지나도록 취업준비생 신세다. 수백 장이 넘는 입사원서를 썼지만 최종 면접까지 가본 곳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요즘 김씨는 패인(敗因)을 ‘나이’에서 찾는다. 지난 3년 동안 ‘스펙’은 나날이 좋아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류전형 통과율은 해마다 떨어졌다. 그는 “나이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증 치료도 받는다”고 말한다.
29~32세, 절벽에 서다
청년실업이 만성화하면서 20대 말~30대 초반 대졸 취업준비생들이 ‘취업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취업절벽은 ‘대학 졸업 후 수년째 직장을 구하지 못하다가 매년 유입되는 어린 졸업생들에게 점점 밀려나 결국 나이로 인해 취업에서 배제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좀더 구체적으로, 29~32세 연령대의 수많은 이가 요즘 천길 낭떠러지의 취업절벽 위에 서서 불안감 속에 좌절하며 자포자기하고 있다. 특히 남자 32세, 여자 30세는 한 살을 더 먹는 올해 12월 31일까지 하루하루 가는 게 공포라고 한다. 올해를 넘기면 그나마 실낱같은 취업 가능성마저 더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취재 결과, 이들 2말3초 취준생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서류전형에서 탈락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면접에서도 나이를 문제 삼는 질문을 많이 들었고 결국 나이로 인해 떨어졌다고 믿고 있었다. 인턴사원 채용에서 나이 차별은 더 극심하다고 했다.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모(30) 씨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구직 준비가 늦어졌다. 박씨는 고령이라는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스펙 쌓기에 집중했다. 만점에 가까운 토익 점수, 6개월 인턴경험, 금융자격증 등을 차근차근 확보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서류전형에서 미끄러지는 일이 잦아졌다. 28세 때는 기업 100곳 중 30곳에 붙었지만 30세 때는 100곳 중 10곳에 붙었다고 한다. 박씨는 요즘 ‘과연 직장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자주 느낀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이라는 숫자는 바꿀 수 없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너무 불공평하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건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양모(29) 씨는 취업준비 3년차다. 그는 세 군데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졸업 후 공백 기간이 있는 구직자는 불리하다’는 불문율을 의식해서다. 그러나 이런 자신도 고령자 기피 경향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나이가 많아도 경력이 있으면 감안해줄 거라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공채만 준비할 걸 그랬다”고 했다.
많은 구직자는 나이가 입사에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본다.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9세 이상 구직자 열에 여덟(77.5%)은 “나이가 채용 여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고 답했다.
“장유유서 유교문화 탓”
실제로 채용 면접에서도 나이를 자주 문제 삼는다. 경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강모(31) 씨는 “모 기업 면접 자리에서 ‘이 나이 먹도록 인턴 한 번 안 하고 뭐했느냐’는 질문을 들었다. 다른 면접자들도 함께 있는데 굴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커리어의 조사에서 29세 이상 구직자의 절반 이상(53.3%)은 면접에서 ‘나이 어린 상사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나이까지 취업을 안 한 이유가 무엇인가’와 같은, 나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같은 조사에서 기업 인사 담당자 4명 중 1명은 “만 30세 이상 지원자는 무조건 탈락시키거나 감점을 줬다”고 답했다.
기업이 20대 말~30대 초 구직자를 기피하는 이유로는, 입사 후 나이로 인해 팀워크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 결격 사유가 있어 그동안 취업을 못했을 가능성이 주로 꼽힌다. 모 건설회사 인사담당 직원 김모(31) 씨는 “지원자가 수만 명씩 오니 학벌, 나이 기준으로 우선 걸러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 30세, 여자 28세 이상은 뽑지 말라’는 취지의 인사지침이 내려올 때도 있다”고도 했다. 기업이 생각하는 신입사원 적정 나이는 남자 28세, 여자 26세라고 한다(잡코리아 조사).
기업의 이러한 나이 차별은 현실과 괴리돼 있다. 청년실업 문제가 계속되다보니 기업의 신입사원 적정 나이를 넘어선 남자 29세 이상, 여자 27세 이상 구직자는 우리 사회에 차고 넘친다. 이들은 나이가 몇 살 많다는 차별적인 이유로 근로의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침해받는 셈이다. 또한 이 대열에 매년 새로운 청년들이 추가로 유입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20대 후반 이상 구직자들은 기업들이 구직난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늦어진 취업연령을 감안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취업절벽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정부도 나 몰라라 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법학과를 나온 박모(30) 씨는 “대학 졸업 후 3년 동안 고3 수험생처럼 취업 준비에 매달렸는데 아직 직장을 못 구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기업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게 결격사유가 있어서 늦어진 게 아니다. 나이로 인한 차별이 상당히 작용하는 것 같다”고 한다.
유교문화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나온다. 성균관대 경영학과 출신의 김모(30) 씨는 “고용 사정 악화로 신입사원의 평균나이가 상승하고 있다. 그런데 기업은 어린 구직자만 선호한다. 이 모순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신입사원은 상사보다 나이가 어려야 한다’는 유교적 장유유서(長幼有序) 문화가 기업에 아직 강하게 남아 있다. 이 때문에 20대 후반 이상 취업준비생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런 문화는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여러 구직자는 “우리 기업들의 ‘연령차별’은 ‘인종차별’보다 더 심각하다”고도 말한다. 이는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그리 과장된 주장이 아니다.
방송인 타일러 라쉬(미국)는 한 종편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이력서 문화’는 미국에선 고소 감”이라고 꼬집었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의 경우 채용 이력서에 나이, 성별, 인종 같은 정보를 기입하지 않는다. 사진도 붙이지 않는다. 미국은 1967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을 만들었다. 기업이 나이 차별을 하면 무거운 벌금을 물린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최모(26) 씨는 “미국과 캐나다에선 성별, 나이, 인종을 묻지 않는 이력서 문화가 당연시된다”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문화가 자리 잡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채용 때도 불리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2007년 나이와 성별을 묻지 않는 개방형 표준이력서를 보급했다. 그러나 ‘권고’ 수준이었고 대부분의 기업은 이 권고를 따르지 않고 있다. 2009년 시행된 연령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나이를 이유로 채용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불법이다. 그러나 실제론 차별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게 인권운동가들의 진단이다. 이들은 이런 관행을 뿌리 뽑으려면 개방형 표준이력서를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고 본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기업이 사실상 취업 연령을 제한하는 것은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지 못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나이에 의한 차별은 기업에도 도움이 안 되는 구시대적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취업절벽에 몰린 청년들은 비정규직인 인턴직원 채용에서도 불이익을 당한다. 인턴 채용은 아예 졸업예정자나 재학생으로 대상을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성신여대 국문과를 수료한 이모(27) 씨는 “인턴 경력으로 스펙을 쌓으려고 했지만 졸업예정자로 요건을 제한해 지원도 못했다”고 말했다.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한 김모(29) 씨는 “비정규직 사무원 자리는 나이 제한에 걸려 꿈도 꾸지 못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직원 이모(31) 씨는 “인턴은 사실상 잡무를 담당하는데, 상사보다 나이가 많은 인턴이 들어오면 일을 시키기 곤란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남자 32세, 여자 30세’ 마감 시한에 걸쳐 있는 여러 구직자는 언젠가는 번듯한 직장을 얻겠다는 일념으로 현실을 인내하고 있었다. 부모가 여간 넉넉한 형편이 아니면 이들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한 강모(29) 씨의 일과는 이들의 전형적인 삶을 잘 보여준다.
강씨는 과외로 학자금 대출금과 생활비를 충당한다. 과외로 손에 쥐는 돈은 월 90만 원. 매달 30만 원이 학자금 대출 상환금으로 나가기 때문에 60만 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그는 외출을 가급적 하지 않는다. 스펙을 쌓는 데 드는 각종 응시료, 인터넷 강의료 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영화관을 찾는 것도 사치다. 식사도 웬만해선 집에서 해결한다. 좋아하는 반찬은 두부. 싸고 양이 많아서다. 취업 준비를 위한 스터디그룹에는 꼬박꼬박 참석한다. 아는 취업준비생들과 커피전문점에 모여 정보도 교환하고 함께 공부한다.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을 보낸다. 그는 “하루하루가 커피 맛처럼 쓰디쓰다”고 말한다.
귀족 취준생 vs 서민 취준생
취업준비생들은 자신들을 ‘귀족 취준생’과 ‘서민 취준생’으로 구분한다. 강씨는 서민 취준생에 해당한다. 귀족 취준생은 억 단위의 돈이 드는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우선 염두에 둔다. 어학연수에 1000만~3000만 원이 드는 등 4종 스펙(외국어 점수·자격증·공모전·어학연수)를 쌓으려면 상당한 비용이 투입되는데, 귀족 취준생에겐 별문제가 안 된다. 이들은 면접용 정장이나 헤어·메이크업에도 아낌없이 돈을 쓴다. 또한 강씨처럼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돼 공부에 훨씬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다. 부모의 넓은 인맥은 덤으로 작용한다.
‘신(God)의 백수’라 해서 ‘갓수’로 통한다는 이화여대 사학과 졸업생 이모(여·27) 씨는 “부모님으로부터 월 용돈으로 100만 원을 타 쓴다. 스펙 쌓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별도다. 부모님에게 과감하게 신세 지고 빨리 취업에 성공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연세대 중문과 재학생 서모(26) 씨는 “경제적 여유가 있을수록 외국어 능력이 좋고, 외국어 능력이 좋으면 좋은 직장을 구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대기업도 이런 ‘때깔’ 나는 귀족 취준생에게 아무래도 더 끌린다고 한다.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생 양모(29) 씨는 “부유한 가정의 취준생은 취업 전쟁에서 확실히 유리하다”고 전했다. 모 대기업 계약직 사원으로 근무하는 김모(30) 씨는 “내가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풍족하게 받는 환경이었다면 대기업 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2년 동안 논술학원 강사 노릇을 하며 시간을 뺏긴 것이 정규직 취업에 큰 핸디캡이 됐다고 본다. 부모의 계층에 의해 취업준비생의 운명도 양분되며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취준생이 취업절벽에 더 많이 내몰린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필자가 만난 나이 든 취업준비생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은 뒤늦게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하거나 아예 구직을 단념하겠다고 했다. 한양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오모(32) 씨는 “올해가 사실상 마지막이니 올해까지만 기업 공채에 도전하고 내년엔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려 한다. 30대에 고시학원을 들락거리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한 박모(29) 씨는 “기업 공채에 합격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 같아 공기업 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구직을 단념한 이들은 정부 통계에서 실업자로 잡히지도 않는다. 이들 중 상당수는 서른이 넘도록 계속 부모에게서 생활비를 타 쓰는 ‘캥거루족’이 될 것이다. 여성의 경우 ‘취집’(취직 대신 시집)을 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결혼적령기 남성은 대개 배우자의 경제력을 따지는 게 현실이다.
구직을 단념한 일부는 부모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소규모 창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주로 음식점이나 커피전문점 같은 것들이었다. 이들의 부모도 노후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재정적 위기에 노출되는 셈이다.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공인중개사,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마트 계산원 같은 일로 생계를 꾸릴 생각이라고 했다.
“출산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서강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구모(여·30) 씨는 “공인중개사는 여자가 일하기 좋은 직업이라고 들었다. 자격증이 있으면 어떻게든 살지 않겠나”라고 했다. 홍익대 국문과를 수료한 이모(28) 씨는 “내년부터 매달 30만 원씩 학자금대출을 갚으려면 어디든 취업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정규직 연령제한을 놓쳐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지 않을까 겁이 난다”고 털어놨다.
취업절벽에 서 있는 이들은 “대기업 취업에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중소기업도 들어가기 힘들다”고 답한다. 상당수 중견·중소기업은 대기업 못지않은 높은 입사 경쟁률을 보인다. 가령 골프존은 500대 1, 위닉스는 150대 1, 대원강업은 200대 1이다. 대기업 경쟁률은 평균 85대 1이다.
이화여대 사학과를 나온 이모(여·27) 씨는 “우리는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기업 정규직에 목숨 걸지 않는다. 그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을 원한다”고 했다. 홍익대 국문과 수료생 이씨는 “4대 보험료 내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임금이면 된다”며 자세를 낮췄다. 월 80만 원의 생활비를 아르바이트로 충당하는 그는 근로계약서를 일부러 쓰지 않았다. 4대 보험 명목으로 떼는 8만 원이 부담스러워서다. 그에겐 휴대전화 요금이나 공과금을 낼 수 있는 큰돈이라고 한다.
나이가 꽉 찬 여성 취업준비생들의 절박함은 남성 취업준비생들의 그것에 못지 않다. 서울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모(여·30) 씨는 취업을 생존이 걸린 문제로 여긴다. 김씨는 “영화 ‘카트’에 나오는 마트 계산원 사정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를 넘기면 나도 그런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취업만 된다면 출산을 하지 않겠다. 일만 하겠다’는 각오”라고 했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나온 박모(30) 씨도 “자기소개서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각서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회사 인사담당 직원 김씨는 기억에 남는 자기소개서 문구로 ‘선인장도 깍두기 썰어 먹는 여자’를 들었다. 이처럼 ‘남성성’을 강조하는 나이 든 여성 지원자가 넘쳐난다고 한다. 국토대장정 경력은 흔한 편이고 히말라야 등반 경력, 철인3종경기 출전 경력을 써내는 여성 지원자도 많다고 한다.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한 유모(여·29) 씨는 “많은 기업은 여자들이 회식, 야근을 기피한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다르다. 여자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국민대 법학과를 수료한 김모(여·27) 씨는 자신이 사는 연립주택의 지하방에 기거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폐지를 주워 생계를 꾸리는 그 할머니의 삶이 자신의 미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 김씨는 “내게 모든 것을 투자한 부모님에게 월 30만 원의 용돈을 드릴 수 있는 직장을 얻고 싶다”고 소박한 꿈을 털어놨다. 그러나 김씨는 “올해도 취업을 못하면 내년부턴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할지 모른다. 100만 원 조금 넘게 주는 그런 일로는 미래를 꿈꿀 수 없다”고 했다.
인생의 골든타임 허비
취업절벽에 서 있는 많은 사람은 학교와 사회가 하라는 대로 ‘모범생’처럼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어학이나 전문지식, 다양한 경험 등 실력 면에선 지금 우리 사회의 중추인 1980~90년대 학번 세대보다 나아 보이기도 한다.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도 넘친다. 그러나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그 나이 되도록 뭐 했어요”라는 편견 탓에 속절없이 인생의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있다. 남은 시간도 얼마 없으니 그 불안은 상상 이상이다. 정부, 정치권, 기업은 나이 차별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숙고해봐야 한다. 이력서에 나이 항목을 삭제하는 작은 일부터 실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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