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위기론이 우리 경제 주위를 맴돈다. 정말로 위기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부진인지, 위기라면 어떤 위기인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위기론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언제 우리 경제가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냐고 반문한다.
위기론은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면서 구성원들에게 위기의식을 불어넣는 효과를 불러온다. 신속하고 적극적인 정책 대응과 생존을 위한 대책 마련의 계기가 된다.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뒤 미국 정부는 금융 구조조정과 통화 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위기론은 경제주체들의 행동을 극단적으로 변화시켜 드라마틱한 반등을 이끌어내곤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대기업 간 ‘빅딜’을 주도했고, 기업들도 앞다퉈 사업 및 인력 구조조정이나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다. 위기 당시 원화가치가 급락한 것은 국내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크게 높이는 데 기여했다. 해외 수요가 살아나자 수출 위주의 한국 경제는 매우 이른 시점에 회복 국면에 접어들 수 있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한국 경제는 위기를 겪은 후 오히려 더 강해진다”는 말까지 나왔다.
문제는 과거의 경험들로 인해 현재의 ‘위기론’을 바라보는 시야마저 흐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내 경제가 지금 봉착한 위기는 과거의 그것과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버블’ 붕괴나 2008년 리먼 사태 때와 달리 지금은 경제성장을 위한 체력 자체가 떨어진 ‘저성장’이 핵심이다.
글로벌 경제 상황도 현재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를 ‘새로운 시시한(new mediocre) 경제’로 묘사하기도 했다.
국가나 기업 모두 구조조정과 같은 뼈를 깎는 노력 없이는 반등을 꿈꾸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고통을 수반하는 구조개혁과 혁신 움직임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서비스 부문의 부진, 세수 부족 등 긴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들에 대해서도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이러다간 국내 경제는 자칫 서서히 더워지는 냄비 속에서 살아날 궁리를 하지 않다 물이 끓고서야 후회하는 ‘냄비 속 개구리’가 될 수도 있다.
위기론이 효과적인 것은 경제주체들이 회복을 위한 각종 대책들을 준비할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위기 뒤 반등’은 그런 고통스러운 변화에 따른 결과물일 뿐이다. 모든 위기는 성격과 대처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곧 나아질 것이라고 맹신하거나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은 잘못된 위기 진단과 대응이다.
세계 경제의 저성장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국내 경제는 그런 세계 경제의 평균 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소수의 대기업을 제외한 수많은 중견·중소기업들은 생존마저 어려워지는 흐름이다. 이번 위기가 기존의 위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결국은 잘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어제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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