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눈]고액체납자 재산 은닉 국민이 감시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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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래 국세청 차장
김봉래 국세청 차장
영화나 소설에 많이 쓰이는 이야기 전개 구조 중에 ‘플롯 트위스트(plot twist)’라는 게 있다. 이야기의 전개를 갑자기 뒤틀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반전’도 이에 해당한다. 관객은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 흐름에 놀라움이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반전이 불쾌감을 주는 경우도 있다. 호화 생활을 하는 고액 세금 체납자 얘기다. 대부분의 체납자는 평소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했지만 사업이 힘들어지거나 자금 융통이 되지 않아 일시적으로 세금을 못 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해외에 재산을 빼돌리거나 지인 명의로 주식을 위장 분산하는 등 교묘한 방법으로 재산을 숨겨 놓고 세금은 내지 않은 채 호화롭게 생활하는 악덕 체납자도 있다.

건설업체를 운영하던 모 회장은 분양 사업 실패와 방만한 경영으로 많은 사람에게 손실을 입혔으며, 수백억 원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해외로 도피해 고급 빌라에 살며 요트를 타는 등 호화롭게 생활하였다. 어떤 고액 체납자는 지갑에 1억 원짜리 수표를 넣고 다니기도 했다. 조세 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세우고 차명 계좌를 이용한 불법 자금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체납 처분을 회피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고액 체납자의 호화 생활이 성실 납세자에게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 세금 납부를 회피하면 그만큼 성실 납세자의 세 부담이 증가한다. 반면 세금을 통해 공급되는 공공재의 특성상 호화 생활을 하는 고액 체납자 또한 공공재의 혜택을 함께 누리게 된다. 이는 조세 정의에 명백히 어긋난다.

국세청은 이를 막기 위해 체납자 재산 추적 전담 조직을 운영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체납자의 생활 실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재산 수색을 실시하는 등 현장 중심의 체납 정리를 전개하고 있다. 고액 체납자 중 고가 주택 거주자는 특별 관리 대상으로 선정해 체납액이 모두 징수될 때까지 생활 실태 확인과 재산 추적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해 고액·상습 체납자에 대해 총 1조4208억 원의 체납 세금을 징수하거나 확보했다. 또 체납자가 숨겨 놓은 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359건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고의적으로 재산을 은닉한 체납자뿐 아니라 이에 협조한 사람까지 총 179명을 체납처분면탈범으로 고발했다.

국세청은 아울러 ‘체납자 재산 은닉 혐의 분석 시스템’을 통해 호화 생활 혐의 체납자를 정밀 선정할 예정이다. 해외에 재산을 은닉하는 경우에도 금융 계좌 정보 교환 등 국가 간 협력을 확대하고 추적 전담반을 통해 숨겨 놓은 재산을 끝까지 추적하는 한편, 국가 간 체납 세금 징수 공조를 통해 해외 재산 환수를 적극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고액 체납자의 재산 은닉은 개인의 사적 영역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행정력을 통한 추적에 한계가 있다. 국민의 관심과 협조가 필수적이다. 고액 체납자의 생활 실태는 함께 생활하는 주변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국세청에서는 고액·상습 체납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한편, 최고 포상 금액이 20억 원인 ‘은닉 재산 신고 포상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고액·상습 체납자 은닉 재산 환수 파수꾼으로 나선다면 이들의 재산 은닉 행태가 크게 줄고 한국 사회의 조세 형평성도 제고될 것이다.

김봉래 국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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