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윤석찬 씨(35)는 이번 달에 연말정산 추가 환급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소식에 실망했다. 지난해 쌍둥이가 태어났지만 출산·입양 공제 폐지로 세금 환급을 못 받은 윤 씨는 정부의 출산 공제 부활 방침에 따라 60만 원을 돌려받을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연말정산 보완대책(소득세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돼 세금을 언제 돌려받을지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윤 씨는 “올해 들어서만 연말정산을 두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며 “이럴 거면 환급 약속을 왜 했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공무원연금 개정안에 발목이 잡혀 연말정산 보완대책 등의 처리가 줄줄이 지연되면서 바닥 민심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달 11일까지 관련 법안이 확정되지 않으면 전체 근로자 1619만 명의 39.4%인 638만 명이 세무서를 방문하거나 국세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연말정산을 다시 해야 해 정치권이 혼란과 불편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이 돌려받을 세금은 4560억 원이다.
○ “11일이 연말정산 처리 마지노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일 경제관계 장관회의에서 “연말정산 보완대책이 11일까지 본회의를 통과하지 않으면 국민에게 약속한 ‘5월 환급’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 많은 사람이 연말정산 신고를 새로 해야 하는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다급해진 가장 큰 이유는 보완대책 처리 시점이 소득세 신고 기간과 겹쳤기 때문이다. 소득세법은 모든 납세자가 5월 31일까지 전년도 소득신고 및 세금 납부를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5월 초순인 지금은 각 회사의 경리팀이나 국세청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개정 법안을 반영해 연말정산을 수정하는 정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달 말까지 이 작업을 마치지 못하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뒤늦게 법안이 개정된다고 해도 일단 5월 31일까지 소득신고 및 세금 납부를 마친 뒤 재신고를 해야 한다. 박금철 기재부 조세정책과장은 “이달 말이 지나면 회사가 더이상 연말정산에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에 근로자 개개인이 소득세 신고를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하필 이달 대다수 직장의 급여일인 25일이 휴일(부처님오신날)이라 22일에 월급이 나간다. 각 회사가 연말정산 재신고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자녀 세액공제 신청을 추가로 받는 데 걸리는 기간(약 2주)을 감안하면 11일이 연말정산 처리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 스텝 꼬여가는 연말정산 대책
납세자들은 연말정산 논란이 불거진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손에 잡히는 대책이 실행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정부는 △출산·입양 세액공제 신설 △연금저축 세액공제율 확대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결과적으로 연말정산 추가 납부액 분납이 가능해진 것을 제외하면 실현된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더욱이 소급 입법까지 추진해 이미 걷은 세금을 돌려주기로 하는 등 조세 안정성을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관련 법안이 국회에 가로막혀 환급이 상당 기간 지연될 상황에 처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근로자의 45.7%(740만 명)가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냈는데, 이번 연말정산 보완대책으로 면세자가 더 늘어나게 돼 정부가 개세주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아 이래저래 난처한 처지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보편 과세 원칙과 불소급 원칙, 약속 이행 원칙이라는 조세의 3대 원칙이 총체적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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