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0%대 대출 0건… 저축銀의 꼼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3일 03시 00분


“고금리 장사” 여론 따갑자 年 9~19% 상품 출시… 40일 넘게 全無

서울 성북구에서 닭갈비집을 운영하는 김영식(가명·51) 씨는 지난달 저축은행들이 자영업자를 위해 연 10%대 금리의 대출상품을 내놨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봤다. 월평균 1500만 원의 카드 매출을 올리는 김 씨는 “카드 매출액의 150%까지 빌릴 수 있다”는 저축은행 직원의 말을 믿고 사업자금으로 2000만 원의 대출을 신청했다. 하지만 김 씨가 저축은행에서 받은 대답은 “대출 불가”였다. 왜 대출이 안 되는지에 대한 설명도 일언반구 없었다. 김 씨는 “소상공인대출 등으로 약 3000만 원의 기존 대출이 있지만 연체 한 번 한 적이 없는데 왜 대출이 안 된다는 건지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저축은행들이 저신용 자영업자를 위한 중금리대(9∼19%) 대출상품을 내놨지만 대출 승인 실적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저축은행들이 거의 모든 대출 고객에게 최고금리를 물리는 행태에 대해 비판 여론이 일자 마지못해 낮은 금리의 대출상품을 내놓고 실제로는 대출을 전혀 해주지 않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저축은행 중금리대출 실적 ‘제로’

저축은행중앙회와 IBK, 더블, 드림, 삼호, 페퍼 등 9개 저축은행은 지난달 1일 자영업자를 위한 중금리 대출상품인 ‘SB가맹점론’을 내놨다. SB가맹점론은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매출실적이 있는 자영업자가 카드사로부터 매출대금을 받는 계좌를 저축은행으로 옮기면 10%대 금리로 최대 1억 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저축은행들이 개인 신용등급과 무관하게 20%가 넘는 고금리로 대출영업을 한다는 지적이 정치권과 금융당국 등에서 나오자 중금리 상품을 개발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40여 일간 100여 명의 자영업자들이 저축은행의 문을 두드렸는데도 대출심사 과정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12일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상품이 출시된 뒤 이달 8일까지 SB가맹점론 집행 건수는 0건으로 집계됐다.

저축은행들은 대출 신청을 해온 자영업자들의 신용등급이 너무 낮아 대출 승인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저축은행들은 SB가맹점론을 내놓으며 자영업자들의 신용을 평가하기 위한 전용 신용평가 시스템을 개발했다. 개인신용등급과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매장의 매출 등을 접목해 별도의 신용평가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이 시스템에 대출 신청 서류를 입력했는데 대출 불가 결과가 나왔다는 게 저축은행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저축은행들은 신용평가가 어떤 기준으로 이뤄지는지, 어떤 사람들의 신용등급이 낮게 나오는지에 대해 “영업 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금융계 안팎에서는 “저축은행들이 애초부터 생색내기용 상품을 만들고 판매할 생각은 없었던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 대형 저축은행들은 참여조차 안 해

저축은행중앙회와 함께 중금리 상품을 내놓은 저축은행은 전체 80곳 중 9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71개 저축은행은 아예 참여를 거부했다. 특히 친애, 웰컴, OK 등 서울을 기반으로 한 저축은행들은 단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중금리 상품을 내놓지 않은 업체들은 이미 자영업자를 위한 유사 대출상품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기존에 판매 중인 자영업자 대출의 금리는 최고 29%다. 친애저축은행이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판매 중인 ‘원더풀 데일리론’의 최고 금리는 연 29.2%다. 연체이자까지 포함하면 금리 상한선인 34.9%까지 치솟는다. 웰컴저축은행의 ‘카드가맹점대출’의 최고 금리도 연 24.7% 수준이다. 신용등급과 무관하게 연 25% 이상의 고금리를 적용하는 업체들도 적지 않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저축은행들이 예·적금 금리는 평균 2%대로 주면서 대출 금리를 20% 넘게 적용하는 것은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아직 중금리 대출을 내놓지 않은 저축은행들의 참여를 늘려 경쟁을 일으키면 자연스레 금리도 내려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에 금리 인하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저축은행들의 신용등급별 대출취급액과 금리에 대한 점검을 강화해 저축은행의 금리 인하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이달까지 저축은행별 실적을 살펴본 뒤 이용자들이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대안을 찾아보겠다”며 “자영업자들이 대출 금리를 비교할 수 있는 한국이지론 등 중개기관과의 협력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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