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금융개혁 현장점검반이 A금융사를 방문한 날. 이 금융사의 B 차장도 자신의 부서에서 정리한 건의사항을 들고 현장점검반 회의실을 찾았습니다. 테이블 맞은편에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실무진 6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적잖이 긴장됐지만 감독규정과 관련한 건의사항을 실제 업무현장 상황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했습니다.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실무진이라 그런지 요지를 바로 이해했고 진지하게 들어주는 모습이었습니다. 부서별로 30분의 시간이 배정됐지만 질문을 받고 보충 설명을 하다보니 45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슈퍼 갑(甲)’이라 여겼던 금융당국의 달라진 모습에 놀라던 찰나 “검토는 해보겠지만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는 해당 규정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1차 답변에 맥이 확 풀렸습니다. “과감히 규제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그저 현장을 점검하려고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정부가 금융현장의 애로를 직접 들어보겠다며 3월 26일 금융개혁 현장점검반을 출범시킨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현장점검반은 매주 은행·보험·금융투자 등 업권별로 2, 3개 회사를 방문해 민원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미 200건이 넘는 제도 개선 사항이 수용됐습니다. 금융당국은 현장점검반이 이제 본궤도에 올라 금융개혁 ‘현장 더듬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의 속내를 들어보면 금융당국의 평가와는 괴리가 있습니다. 일단 금융당국이 쉽게 수용할 수 있는 건의사항을 취사선택하고 정작 금융회사들이 시급하게 요청한 사항들은 해결하지 않는다며 ‘보여주기 식’ 점검이란 목소리가 들립니다. 실제로 많은 금융회사의 관심사인 복합금융점포에 보험사 입점을 허용해 달라는 민원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처리가 보류됐습니다. 금융실명법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니 기준을 탄력적으로 적용해 달라는 민원에 대해서도 추후 검토하겠다는 답변이 나왔습니다.
금융회사들에 계속해서 규제에 대한 건의사항을 제출하라는 금융당국의 요구도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당국에서도, 협회에서도 규제 관련 민원을 내라고 쉴 새 없이 지시가 내려옵니다. 이제 규제 관련 민원을 제출하는 것 자체가 숙제입니다.”(C금융사 관계자)
“현장점검반이 뭐냐”고 반문하는 등 아예 현장점검반의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큰 기대가 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금융회사들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금융당국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불신이 뿌리 깊다는 이야기겠지요.
이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금융당국의 몫입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금융개혁의 가장 큰 장벽은 금융회사의 불신”이라며 금융당국의 ‘낮은 자세’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현장점검반이 낮은 자세로 진정성 있게 금융현장을 누비며 금융회사의 불신을 누그러뜨리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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