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인도 등 아시아계 은행들이 한국 시장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미국계인 한국씨티은행이 최근 자회사 한국씨티캐피탈을 아프로서비스그룹에 넘기는 등 몸집을 줄이고, 영국 최대 국영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가 3월 서울지점을 철수하며 한국에서 보따리를 싼 것과 대조적으로 아시아계 은행들은 한국 내 지점 설립 준비에 한창이다. 외국인 체류자가 180만 명을 돌파하는 등 한국에 거주하는 자국민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자 아시아계 은행들이 한국 시장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시장 두드리는 아시아계 은행
금융당국 및 은행권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최대 국영은행인 느가라 인도네시아 은행(Bank Negara Indonesia·이하 BNI)은 4월 지점 설립을 위한 예비인가를 취득한 데 이어 전산망 설비 작업에 나서는 등 본인가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면 지점을 열고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하리란 관측이 나온다.
BNI는 지난해 6월 이미 NH농협은행과 포괄적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한국 진출에 적극적이다. 올 4월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은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에게 BNI의 서울지점 설립 심사를 서둘러달라고 요청했다. 인도네시아에 1000여 지점을 갖고 있는 BNI는 홍콩, 도쿄, 런던 등지에도 영업망을 두고 있다. 자산 규모는 약 32조 원이다.
인도 최대 은행인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SBI)도 한국 지점 설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르면 6월 서울사무소를 지점으로 전환해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밖에 아랍에미리트 퍼스트걸프은행과 필리핀 BDO 유니뱅크도 지난해 한국 사무소를 차리고 영업 확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중국계 은행들은 위안화 예금 증가와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의 송금 수요에 힘입어 덩치 키우기에 한창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5대 중국계 은행(중국·건설·공상·교통·농업)의 한국 내 총자산은 지난해 말 현재 52조250억 원으로 2013년 말(26조9886억 원)의 두 배로 불었다. 중국계 은행의 대표주자인 중국은행의 총자산은 19조5856억 원에 달한다.
●자국 근로자의 송금 수요에 주목
아시아계 대형 은행들이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한국에 들어오는 자국 노동자와 유학생, 기업이 늘면서 송금 및 환전 수요가 커지고 있어서다. 법무부에 따르면 3월말 현재 국내 외국인 장단기 체류자는 181만3000명에 달한다. 이 중 156만3000명이 아시아계로 중국 동포 외에 인도네시아(4만3000명), 필리핀(5만4000명) 국적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은 한국 은행들의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 기준 시중은행 7곳(신한, 국민, 우리, 하나, 외환, 농협, 기업)의 외국인 고객은 중복 가입자를 포함해 563만 여명에 달했다. 외환은행 김선규 외국고객부장은 “아시아계 은행들의 한국 진출이 본격화되면 경기 안산 등지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상대로 적극적인 영업을 해 온 국내 은행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은행들은 자국 고객은 물론 해당국에 진출하는 한국 중소기업들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업 및 금융 컨설팅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송금 시 수수료 혜택도 기대할 수 있어서다. 금융연구원 김우진 연구위원은 “중국계 은행들의 경우 위안화 결제수요를 등에 업고 기업 금융 분야에서 강점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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