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눈]소득주도 성장론의 함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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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올해 1분기(1∼3월)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8%에 그쳤다. 4개 분기 연속 0%대 성장률이다. 지난해까지 성장률 저하의 원인은 주로 내수 부진에서 찾아 왔다. 그런데 올해 1월부터는 수출 규모마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국내 경제가 잠시 주춤하는 것이면 좋겠지만 혹여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저성장 추세가 고착화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국내 경제의 저성장은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지만 전문가마다 생각하는 해법은 각기 다른 듯하다. 최근 회자되는 해결책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론이다. 임금을 올리면 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진작된다. 이는 기업 투자를 유도해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을뿐더러 부작용이 더 클 것이란 우려도 많다.

무엇보다 임금이 오르면 기업 입장에선 곧바로 생산비용이 늘어난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기업들은 생산비용 증가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기 어렵다. 가격을 인상하면 경쟁력 약화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투자여력도 줄어든다.

반면에 임금 인상으로 인한 경제성장 효과는 당장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근로자들이 월급이 오른 만큼 소비를 더 한다손 치더라도 이것이 기업의 재고 소진, 가동률 증가, 투자 확대 등으로 이어지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사실 지금 같은 불황기에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있는 기업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의 기업은 살아남기에도 급급한 처지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의 경우 인건비 상승은 치명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임금 인상을 유도한다면 결국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만 확대시킬 뿐이다. 나아가 임금 인상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주저할 게 분명하다.

소득주도 성장론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가장 먼저 임금 상승에 따른 기업의 비용부담 증가분보다 늘어난 소비지출로 인한 기업매출 증가분이 더 커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통계로 보면 임금 증가가 곧 소비 확대로 이어질까 의문이다. 2010∼2014년 가계평균소득은 18.5% 증가한 반면에 가계평균지출은 13.3%만 늘어났다. 그중에서도 소비지출은 11.6% 증가에 그쳤다.

그 대신 연금, 조세, 이자비용 등 소비와는 무관한 지출이 19.4%나 늘어났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노후 대비 등으로 평균소비성향은 같은 기간 63.0%에서 60.0%로 떨어졌다. 굳게 닫힌 국민들의 지갑이 소득이 늘어난다고 무조건 열리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국내 소비자들의 해외 직접구입 규모는 지난해 전년 대비 50% 가까이 증가했다. 해외직구 폭증은 내수 진작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저성장을 탈피하기 위한 방법은 자명하다. 정부는 기업들이 활발하게 경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기업은 적극적인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기업들의 수익성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투자가 늘고 임금도 오르게 된다. 이를 통해 내수가 진작되고 수출이 늘어나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마차는 말이 끌게 해야 한다. 급하다고 마차더러 말을 끌라고 할 수는 없다. 성공한 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원인과 결과를 절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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