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언제나 작은 틈새에서 발생한다. 근사한 음식도 예외가 아니어서, 문화의 교차점에서 각 문화가 서로 이웃에게 빌려온 것을 수정하고 더 훌륭하게 만드는 과정을 거쳐 창조된다. -음식의 언어(댄 주래프스키·어크로스·2015)
요즘 TV를 켜면 요리 프로그램이나 ‘먹방’이 넘쳐난다. 요리 잘하는 섹시한 남자를 뜻하는 ‘요섹남’ 열풍이 불고, 소셜네트워크(SNS)에도 음식 사진이 단골로 올라온다. 사람들은 음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음식의 언어는 곧 욕망의 언어다.
이 책은 계량언어학의 세계적 석학인 댄 주래프스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가르치는 인기 교양과목인 ‘음식 언어’ 강의를 엮은 것이다. 저자는 음식의 언어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역사,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학문을 먹다(eat)와 어원학(etymology)을 합성해서 만든 ‘먹기어원학(EATymology)’이라고 표현했다.
식탁위에 펼쳐진 세계지도에는 수천 년에 걸쳐 동서양을 오가며 변화해 온 음식과 문명의 역사가 담겨있다. 케첩은 중국에서 유래했다. ‘케’는 광둥어로 토마토를 뜻하고, ‘첩’은 한자어 즙(汁)에서 온 말이다. 중국의 한무제(漢武帝)를 사로잡았던 생선 젓갈은 서양인의 입맛에 맞게 변모해왔고, 미국이 패권을 쥐면서 세계인의 음식이 됐다.
음식의 언어는 우리가 누구인지, 또 남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1900년대 초반 수집된 1만여 개의 메뉴를 분석한 결과 음식 가격이 비싼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에 쓰인 프랑스어가 저렴한 식당 메뉴의 다섯 배나 됐다. 대부분 영어와 프랑스어가 뒤죽박죽 섞인 잡탕 언어였는데, 가끔은 ‘르 크랩미트 칵테일(Le crabmeat cocktail·)’처럼 프랑스어 관사만 덧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또 저자의 연구 결과 레스토랑이 요리를 설명하는 데 더 긴 단어를 쓸수록 음식값은 더 높아졌다. 어떤 음식을 묘사하는 평균 단어 수보다 글자 하나가 많아질 때마다 18센트(약 200원) 비싸졌다. 오늘 당신의 밥상에는 어떤 욕망이 쓰여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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