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 데 덮친 격이다. 엔화 약세로 인한 수출부진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라는 돌발변수까지 등장했다. 한국경제에 이렇게 먹구름이 짙어지면서 한국은행이 11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현재 연 1.75%인 기준금리의 인하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1100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도 가시지 않고 있어 한은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 8월, 10월, 올 3월 등 3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 0.75%포인트 내려 사상 처음 1%대 기준금리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한은은 4월과 5월에는 2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세 차례의 금리 인하 후에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격이 오르고 소비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므로 금리 인하 효과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5월 금통위 당시 “심리지표로 보면 경기 개선에 긍정적인 신호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흐름을 지속적으로 지켜볼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은의 기대와 달리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도리어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수출이 심각한 부진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올해 5월 수출이 작년 동월대비 10.9%나 줄어드는 등 수출은 5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4월 산업생산 역시 3월보다 0.3% 줄어드는 등 두 달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스 사태라는 돌발변수까지 터지자 소비 위축의 현실화하고 있다. 대형마트, 음식점, 영화관을 찾는 발걸음이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여행·관광업계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한국 여행 취소사태가 빚어지면서 매출감소를 겪고 있다.
일부 민간 전문가들은 경기침체가 심화되지 않도록 지금이야말로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로 적극 대응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이 급락하는 가운데 메르스까지 겹쳐 전반적인 경기하강이 우려된다”며 “추가적인 금리인하와 더불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원화 가치를 끌어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소비가 좀 살아날 조짐을 보이다 메르스라는 악재를 만났다”며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응하기보다는 한발 앞서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를 통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소비심리 위축으로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는데 올해도 이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과감하고 빠른 조치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월에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 만큼 한은이 7월이나 8월에 금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으므로 사실 이번이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아니냐는 분석이 시장에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그간의 금리 인하와 부동산규제 완화로 급격히 늘어난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를 언급하며 한은의 금리인하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11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미국금리 인상 등 외부충격이 발생하면 금융시장 불안을 촉발할 최대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경기가 안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준금리를 내려도 돈이 실물로 흐를 가능성이 낮고, 가계부채도 불안요인”이라며 “기준금리 인하보다는 재정확대 정책이 현 상황에서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팽팽한 찬반 속에 한은의 고민은 깊어져 가고 있다. 김유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르스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기에 아직 시간이 짧아 이번에는 금리 동결이 유력하다”면서도 “(금통위가)금리 인하 여지를 남겨둘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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