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투입할 지자체 재난관리기금, 곳간 열어보니 5764억 ‘펑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1일 03시 00분


지자체, 법정의무 적립액 13% 미달

전국 243개 광역 및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적립한 재난관리기금 누적액이 법정 목표치 대비 8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광역지자체 중에는 기금 적립액이 24%에 불과한 곳도 있었다. 재난관리기금은 메르스 등 전염병을 비롯해 각종 재난 대처에 최우선으로 쓰이는 자금인 만큼 최소한 법정 기준은 맞출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기획재정부와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각 지자체가 지난해 말까지 적립한 재난관리기금의 누적액은 3조9910억 원으로 법정 의무 적립액(4조5674억 원)의 87%에 그쳤다. 법정 목표치에 5764억 원이나 모자라는 수준이다. 특히 광역자치단체들의 기금 조성이 부진했다. 17개 광역자치단체의 적립률은 평균 83%에 불과했다. 226개 기초자치단체는 이보다 높은 97%였다.

재난관리기금 조성은 각 지자체가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법정 의무 사항이다.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 제67조에 따르면 지자체는 최근 3년간 지방세법에 의한 연평균 보통세 수입 결산액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재난관리기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노골적으로 이를 무시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법으로 정한 재난관리기금을 제대로 채우지 않으면서 신규 청사 건립을 위한 자체 기금 적립에 돈을 아끼지 않는 지자체도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3월 말 현재 적립액은 1조9937억 원이다. 정부는 남은 금액 중 금융회사에 의무 예치된 7513억 원을 제외한 1조2424억 원을 메르스 사태 해결에 쓸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재난관리기금의 낭비를 줄였으면 이번 메르스 사태에 대응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훨씬 많았을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관련법은 이 기금을 재난 예방과 응급 복구에 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두 용도 간 기금 사용 비율에 대한 별도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는 지역 건설 경기에 도움이 되는 하천 정비 등 재난 예방 사업에 관행적으로 이 기금을 집행해 왔다. 경기도 등 55개 지자체는 재난관리기금을 재해구호기금과 통합한 뒤 이를 재난 안전과 무관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나 일반회계의 재정 부족분을 메우는 데 쓰다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재난관리기금에 대한 정부의 모순된 태도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자체가 재난관리기금을 법에 규정한 대로 적립하지 않을 경우 포상을 제한하거나 신규 사업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자치부의 지자체 재정분석평가에선 재난관리기금을 적게 적립할수록 오히려 높은 점수를 받도록 제도가 설계돼 있다. 재난관리기금과 같은 의무 지출 금액이 많아 ‘세출 결산액 대비 의무 지출액 비율’이 높을수록 재정 운용의 유연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당국자는 “최근 감사원이 행정자치부에 재난관리기금 적립을 소홀히 한 지자체가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보완하라고 통보해 제도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 재난관리기금 ::

각종 재난의 예방과 복구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광역 및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매년 적립하는 법정 의무 기금. 공공 분야의 재난 예방 활동, 감염병, 가축 전염병의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 대응 사업 등에 사용된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메르스#지자체#재난관리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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