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경기부양 대책 촉구
“통화정책 완화 기조 유지한 것… 가계부채, 정부가 적극 대응해야”
금융계 “공수가 뒤바뀐것 같다”… 유승민 “가계부채, 경제 시한폭탄”
여권일각, 금리인하 우려 목소리
“공수(攻守)가 바뀐 것 같다.”
한국은행이 11일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한 것을 두고 금융계에서는 이런 촌평들이 나오고 있다. 예전에는 정부가 한은의 금리 인하를 거세게 주문하고 한은은 이를 방어하느라 진땀을 빼는 구도였다면, 이제는 한은이 선제적으로 ‘할 일’을 하고 정부를 몰아붙이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취임 직후부터 통화정책의 독립성 논란에 시달려온 이주열 총재(사진)도 최근에는 부쩍 자신감이 붙은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 총재는 12일 발표한 한은 창립 65주년 기념사에서 “한은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금융중개지원대출을 증액하는 등 통화정책 기조를 크게 완화한 것이 경기 개선에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며 “향후 통화정책은 완화 기조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운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에도 국내 경기 회복세가 미흡할 경우 통화정책 기조를 조정하는 데 신중을 기할 것”이라며 올해 말 미국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한국이 바로 따라 올리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는 앞으로 발생할 국내외 돌발변수에도 불구하고 한은이 통화정책의 주도권을 갖고 경기 회복을 이끌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총재는 전날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는 오히려 정부에 ‘정책 훈수’를 두기도 했다. 이 총재는 “우리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세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구조개혁 노력이 필요하다”며 “기준금리 인하는 가계부채 확대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당국은 이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은이 경기를 끌어올리고자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으니, 이젠 정부가 금리 인하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압박한 것이다. 또 이 총재는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가 미흡하면 경기 회복이 지체돼 경제가 구조개혁의 충격을 견디기 어렵다”며 예전과 달리 한은이 먼저 나서서 정부의 구조개혁을 지원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한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이 이번에 전격적으로 금리를 내린 것은 더이상 정부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총재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도 경제 전망을 잘못해 금리 인하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은이 올 4월 경제성장률(3.4→3.1%)과 물가상승률(1.9→0.9%) 전망치를 예상보다 큰 폭으로 낮춘 것 역시 “한은이 안이한 경기 판단으로 선제적인 통화정책을 못한다”는 비판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런 이 총재의 변신에 대해 정작 정부·여당 내에선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2일 국회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금리 인하는 내수경기 진작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이해한다”면서도 “걱정되는 것은 악성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여당의 대표적 경제전문가인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도 “금리 인하가 경기 후퇴를 막는 데는 별 효과가 없고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에 자금이 몰려 거품이 생길 것”이라며 “계속되는 단기 응급조치 때문에 구조개혁의 동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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