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 해체에 대비해 2012년부터 기술개발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원전 가동 30년 만에 세계 최고의 역량을 갖춘 것처럼, 해체 분야에서도 단기간 내에 세계적인 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겠습니다.”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사장(58·사진)은 17일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한수원 서울사무소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1호기의 폐로 계획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원자력 이용을 위한 기술개발을 시작으로 원전 건설-운영-정지-해체를 하나의 사이클로 봤을 때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는 원자력의 전(全)주기 한 바퀴를 완성하는 마침표라는 것이다. 원전 폐로 결정은 한국의 발전(發電) 역사 역사에서 사상 처음이다.
조 사장은 “원자력발전소 영구정지는 한국에서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이라며 “원자력으로 혜택을 본 우리가 후세대에 부담을 남기지 않겠다는 정신으로 폐로(閉爐·원전 폐쇄 및 해체)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한수원이 정부의 고리 1호기 폐로 결정을 수용하긴 했지만 지금도 고리 1호기의 안전성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전성 평가, 방사선 환경 영향평가 등을 진행한 결과, 추가 수명연장을 위한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며 “그럼에도 영구정지 결정을 내린 것은 경제성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말했다.
10년 추가 재가동을 하면 최대 1900억 원의 이익이 발생하지만, 세금(법인세)을 내고 주변지역 보상금 등을 지원하면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최근 경북 경주시 월성 1호기의 재가동을 위해 한수원이 내기로 한 지역 지원금은 1310억 원에 달했다. 이를 반영하듯 산업통상자원부의 정지 권고가 있었음에도 16일 열린 한수원 이사회에서 회의에 참석한 이사 10명 중 2명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에 반대표를 던졌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어 원전을 멈추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이었다.
정치권, 시민단체 등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원전 가동을 중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조 사장은 “겸허하게 받아 들여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기업인 한수원의 주인은 결국 국민이다. 한수원의 결정이 국민 정서와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며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권의 목소리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수원에게 고리 1호기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1978년 7월 준공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고리 1호기를 ‘20세기 과학의 찬연한 등불’이라고 표현했다. 또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456억 원)의 4배 가까운 1560억 원을 투입해 지은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었다. 환경단체들이 “130회 넘게 고장 난 고물”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그 중 80%는 ‘초보운전’ 시기인 가동 초기 10년 사이에 집중됐다.
조 사장은 영구정지 결정을 내리면서 직접 ‘폐로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았다. “솔직히 2017년 이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생각이 머리 속에 들어있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7년의 시간이 있습니다.” 원전 정지까지 남은 2년, 정지 후 관련 법령에 규정된 원자로 냉각기간 5년이 그것이다. 2022년에 한수원이 정부에 구체적인 계획서를 내면 그 때부터 본격적인 폐로 절차가 진행된다.
조 사장은 2005년 산업자원부 원전사업기획단장 시절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입지를 경주로 결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면서 주민투표를 진행한 건 유례를 찾기 힘들었다. 조 사장은 “당시 경험이 지금의 자산이 됐다. 모두가 원전의 안전 운영을 걱정할 때, 나는 원전의 ‘뒷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원전 가동 37년 만의 첫 폐로 결정은 그가 말하는 ‘뒷부분’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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