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뷰스]지금은 개원절류에 충실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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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하 농협은행장
김주하 농협은행장
한국 경제가 어렵다. 투자가 위축되고 장래가 불투명하니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다. 나라마다 체감 온도는 다르지만 세계 경제도 전반적으로는 ‘흐림’이다. 은행 살림살이도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저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예대마진은 계속 줄어들고 급변하는 금융 환경에 발맞춰 전산 개발, 소비자 보호, 정보 보호 등 관련 비용은 늘어나는 구조이니 말이다. 이제는 은행산업도 ‘레드오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내가 몸담고 있는 농협은행은 금년도 경영 화두로 ‘개원절류(開源節流)’를 뽑아 들었다.

‘개원절류’는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인 순자가 제시한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방도로서, ‘물의 근원을 넓게 열고, 흐름을 조절하라’는 뜻이다. 즉, 생산 활동에 저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땀 흘려 얻은 재화를 신중히 소비해야 함을 일컫는 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소득 재원을 개발하고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개원절류’의 가르침은 역사의 부침에서도 엿볼 수 있다. 16세기 스페인은 식민지 개척으로 ‘황금의 시대’를 누리던 시기였다. 하지만 신대륙으로부터 유입된 막대한 금과 은은 생산 활동을 위한 산업화의 재원이 아닌 왕실의 전쟁 비용이나 귀족들의 사치로 흘러 들어갔다. 엄청난 재정이 투입된 무적함대(Armada)의 창설과 몰락도 그 정점에 있었다.

아울러 당시 재정·금융·세무·상업 등에 종사하던 유대인 추방은 경제의 핵심 두뇌를 스스로 제거한 꼴이었다. 바르셀로나 대부분의 시영은행은 파산에 이르렀고, 경제는 근간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국가 재원의 ‘근원’을 파괴하고 ‘흐름’을 조절하는 데 실패한 나머지 스페인은 국운이 기울었다. 반면 유대인을 받아들이고 산업의 균형 성장을 이루어낸 네덜란드는 17세기 초강대국으로 거듭나며,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서 약 150년간 영예를 누렸다.

최근 우리 정부는 금융권과 함께 침체된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을 요량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저금리 정책을 펼치고 있고, 금융권에는 새로운 수익원을 찾도록 해외 진출을 독려하고 있다. 서민들 어깨를 짓누르는 가계 부채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약 34조 원을 ‘안심전환’이란 이름을 붙여 저금리·고정금리 장기대출로 바꿔 주었다.

은행권도 저금리 시대를 맞아 포트폴리오 재조정, 해외 진출, 수수료 이익 확대 등 활로 마련에 분주하다. 농협은행도 ‘개원절류’를 화두로 내세우고, 물량을 늘리는 것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등한시해 왔던 곳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수익 창출에 애쓰고 있다. 예를 들면 농협은행만의 독특한 조직인 시군지부는 예전 농정활동 위주에서 마케팅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고, 경제사업장과 연계하여 농협은행만의 색깔을 담은 ‘NH올원카드’도 출시했다. 파생상품, 해외 직간접투자 등의 업무는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비용은 관행에 젖어 무심코 지출하는 부분까지 꼼꼼하게 찾아내 줄이고 있다. 모든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동참으로 그 결실도 기대 이상이다.

나라 살림이나 은행 살림이나 집안 살림이나 꾸려가는 방법은 똑같다. 수입 원천을 다변화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지출에는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불요불급한 비용은 찾아서 반드시 줄여 나가야 한다. 구석구석 ‘개원절류’를 실천하여 한국 경제가 늘 ‘맑음’이었으면 좋겠다.

김주하 농협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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