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인재요? 많이 뽑으려 해도 지원자가 부족한 걸 어떡합니까.” 몇 년 전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의 인사담당자는 채용철만 다가오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체 채용자의 20∼30%를 전북 출신으로 뽑아 달라”는 지방자치단체와 대학들의 압박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이 담당자는 “지난해 전북 출신 지원자가 전체의 8%에 불과했다”며 “신입사원의 10%는 무리해서라도 지역인재로 채울 수 있지만 20%까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공공기관들의 지방 이전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공공기관들이 인력 채용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고용 안정성, 복지 혜택 등으로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에 대한 지역사회의 압박은 심한 반면 뽑을 만한 지역인재의 수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때문에 지역인재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추진 중이다. 》
2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채용실적과 올해 채용계획이 보고된 지방 이전 공공기관 79곳 중 지역인재 채용률이 지난해보다 낮거나 같은 곳은 31곳(39.2%)으로 집계됐다.
지역인재란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규정된 개념으로 공공기관이 옮겨 온 시도의 지방대학을 졸업했거나 졸업할 예정인 사람을 말한다. 공공기관은 이들을 우선 고용할 수 있지만 가점을 부여할 만한 인재가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 공공기관 40%, 지역인재 채용 소극적
최근 광주·전남지역 공공기관 합동채용설명회에 참석했던 한 인사담당자는 “학생들이 지원해도 떨어질 것 같다고 지레 겁을 먹기에 우리는 스펙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누차 강조했다”며 “하지만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부산대 출신 취업준비생 허모 씨(27·여)는 “우리 지역 공공기관 입사 경쟁률이 워낙 셀 것 같아서 경쟁률이 낮을 것 같은 외진 지역 기관에만 지원하려는 친구들도 있다”고 전했다.
지역인재들에게 다양한 공공기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점이 지원자 부족 현상을 부추긴다는 분석도 있다. 광주·전남지역으로 이전한 한 공공기관의 관계자는 “최근 연 합동취업설명회에 인기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가 참가하지 않아 발길을 돌리는 학생이 많았다”며 “학생들은 인지도 높은 몇몇 기관 외에는 채용일정 등을 모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 ‘지역인재’ 범위 개정안 두고 지역 간 신경전
기관이 속한 시도 학생만 우대하다 보니 인재풀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울산혁신도시에 정착한 한 공공기관의 인사담당자는 “예를 들어 우리는 대구의 영남대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뽑고 싶어도 울산에 속하지 않아 이들을 우대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울산에 정착한 공공기관은 7곳이지만 이 지역의 4년제 대학은 2곳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토부와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 의원 등은 특별법 일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속한 시도가 아니더라도 법에서 정한 생활권에 속한 대학 출신자라면 채용 시 우대를 받을 수 있도록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올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 상반기에 관련법이 시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은 전국을 충청권, 호남권, 대구·경북권, 부산·울산·경남권, 강원권, 제주권 등 6개의 생활권으로 나눠 공공기관이 현재보다 넓은 지역의 대학생들을 고용할 때 우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일부 지자체와 대학은 반대하고 있다. 부산·울산·경남이 한 생활권으로 묶이면 해당 지역 대학생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지원자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도 울산대 역량개발지원처장은 “울산시가 애써서 공공기관을 유치했는데 다른 지역 인재까지 우대하는 건 안 된다”며 “공공기관과 지역이 함께 발전하려면 울산의 대학생들을 일정 비율로 뽑아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하율 산업연구원 지역발전연구센터 연구위원은 “공공기관별로 특성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공공기관에 지역인재 채용 비율을 강제하면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며 “긴 호흡으로 지자체, 공공기관, 대학이 협의해 기관에 필요한 맞춤형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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